“시장 작은 한국벤처, 세계를 겨냥해야”

  • 입력 2008년 6월 21일 03시 11분


美실리콘밸리 ‘한국계 벤처의 대부’ 황승진 스탠퍼드大 교수

“한국의 벤처산업이 고전하는 이유는 시장이 작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글로벌화에 나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며 ‘한국계 벤처기업의 대부’로 통하는 황승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19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은 앞으로 신(新)성장동력 산업을 찾으면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벤처기업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시장 자체의 크기도 중요하다”며 “벤처에 자본이 안 들어오는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지탱할 시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에서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후에도 구글과 같은 거대 벤처기업이 나타난 것은 실적을 낼 수 있는 큰 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미래 신성장동력 산업과 관련해서는 “미국 회사들은 에너지와 환경을 신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산업발전 초반에 한국이 뛰어들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기존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여 시장을 다시 장악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조언을 빼놓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양 산업으로 꼽히는 섬유만 해도 세계 톱10 의류업체는 모두 미국 일본 스페인 등 선진국 회사라는 설명이다.

황 교수는 최근 한국 내 일부 세력이 주도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한국에서 쇠고기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 전까지 미국인이나 재미교포는 일상적으로 쇠고기를 먹었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시위에는 반미(反美)와 반정부, 인터넷 파워 등 여러 요소가 한꺼번에 녹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쇠고기 문제를 이렇게 풀어나간다면 미국에서도 반대급부를 요구하게 마련”이라며 “우리가 내줘야 하는 게 뭔가를 생각하고 그게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한국은 미국의 속국’이라는 좌파 세력의 상투적인 선전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박했다.

“한국이 수출하는 것은 자동차 등인데 우리가 미국에서 수입하는 건 농산물입니다. 이건 예전 식민지경제론에서 말하는 본국과 식민지의 교역품이 뒤집힌 꼴 아닙니까. 내가 볼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아무리 봐도 좋은 거래입니다. 균형감을 갖고 올바르게 문제 제기를 해야 합니다.”

특히 그는 “미국에도 우파와 좌파가 있지만 동맹국이나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대내외 변수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경제에 대해서는 저력을 평가했다.

그는 “베트남 사람들이 ‘대중화주의에 흡수되지 않은 아시아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로 국가 지도자들이 한국을 잘 이끌어왔다”며 “강대국 사이에서 이렇게 살아남고 발전한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에서 금융을 잘하는 것을 ‘재테크’라고 조롱하거나 ‘불로소득’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한국은 금융업이 너무 약하며 경제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금융”이라고 조언했다.

황 교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영원이 마련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하는 스탠퍼드대 최고경영자과정 강의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1987년부터 스탠퍼드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실리콘밸리 기업 10여 곳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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