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100년 기업’을 가다]⑥주방칼 유통업체 기야

  • 입력 2007년 11월 2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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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의 기야 직영점 1층 매장에 전시된 많은 종류의 부엌칼과 가위, 주방용품들. 항상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일본 도쿄의 기야 직영점 1층 매장에 전시된 많은 종류의 부엌칼과 가위, 주방용품들. 항상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R&D로 녹슬지 않게” 215년 날 선 경영

《독일 베를린동양미술관이 소장한 일본 미술품 중에는 ‘기다이쇼란(熙代勝覽)’이라는 두루마리 그림이 있다. 1805년경 에도(도쿄·東京의 옛 이름)의 대표적 상점거리였던 니혼바시(日本橋) 일대의 모습을 1690명이 함께 그린 역작이다. 그림 속에는 칠그릇, 날붙이(칼 낫 도끼 등 날이 서 있는 제품), 전통악기 등 취급 상품은 각각 다르지만 ‘기야(木屋)’라는 상호를 똑같이 내건 도매상들이 죽 늘어선 모습이 묘사돼 있다.》

기야 개요
구분내용
창업연도1792년
창업 당시
업종
목공용 날붙이도구 도매
현재 업종부엌칼 등 주방용 날붙이 도매
본사 소재지도쿄 도 주오 구 니혼바시무로정
홈페이지www.kiya-hamono.co.jp
연간 매출액26억6000만 엔(약 212억 원)
종업원200여 명
소매점도쿄 니혼바시 직영과 백화점 등 160여 곳
사훈① 대물림 장사임을 잊지 말 것
② 상품에 성실을 담을 것
③ 항상 새로운 연구를 게을리 하지 말 것

본점인 칠그릇 도매상에서 일하던 종업원들이 바로 옆에 가게를 내 독립하면서 작은 ‘기야 구역’이 만들어졌던 것. 그 후 체제 변화, 전쟁, 가난, 불황 등 격동의 200년이 흘렀지만 기야라는 상호는 지금도 건재하다.

○‘유일한 생존자’

도쿄에서 지하철 긴자(銀座)선을 타고 미쓰코시마에 역에 내리면 일본의 부유층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백화점인 미쓰코시의 니혼바시 본점과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사무용빌딩 미쓰이본관이 웅장한 외관을 드러낸다.

사거리를 끼고 이 두 건물과 마주하고 있는 낡은 6층짜리 건물의 외벽에는 일본의 전통인물화와 함께 큼지막한 한자 간판이 걸려 있다.

‘刃物の木屋(날붙이의 기야)’

100m²가 조금 못 되는 1층 직영매장 안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엌칼과 가위, 주방용품 등이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많은 날붙이 중에서도 단연 그 수가 많은 것은 부엌칼. 가격은 대개 1만 엔(약 8만 원) 안팎으로 일반 양판점에서 파는 제품보다 4, 5배가량 비싸다.

가토 도시오(加藤俊男·81) 기야 사장은 “이곳이 바로 1792년 기야 본점(칠그릇의 기야)에서 갈라져 나온 날붙이의 기야”라면서 “기야라는 상호를 쓰던 다른 도매상은 모두 문을 닫거나 이 일대에서 모습을 감췄다”고 설명했다.

○연구개발로 매장서 신뢰 쌓아

기야가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소매점은 본사 직영점 외에도 일본 전역에 걸쳐 160곳에 이른다. 대부분은 유명 백화점 안에 있는 판매점들이다. 가장 고급품 시장인 백화점만 따지면 일본 부엌칼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그대신 기야는 양판점 등에는 전혀 제품을 공급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묻자 가토 사장은 사훈(社訓) 중 두 번째 항목을 가리켰다.

‘상품에 성실을 담을 것.’

최고 실력을 갖춘 장인(匠人)들에게만 제조를 맡기기 때문에 양판점용 가격대 제품은 만들 생각도 없고 만들 방법도 없다는 설명이었다.

기야는 직접 제품을 만들지 않는 유통기업이지만 다른 도매업체들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한 가지 갖고 있다.

신상품 개발과 설계, 품질 테스트 등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한다는 점이다.

기야의 사훈 세 번째 항목이 ‘항상 새로운 연구를 게을리 하지 말라’인 것은 이런 이유다.

가토 사장은 기야가 백화점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를 얻게 된 요인으로 이 같은 연구개발력과 함께 지금까지 시대변화를 선도하면서 쌓아 올려온 이미지를 꼽았다.

○스테인리스강 부엌칼 보급의 일등공신

일본 최고의 명문사학인 와세다(早稻田)대 응용금속과를 나온 가토 사장은 졸업과 함께 가업을 계승하기 위해 기야에 입사했다. 일본에서 스테인리스강 부엌칼이 갓 보급되던 시절이었다. 녹이 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소비자들은 스테인리스강 부엌칼을 외면했다. 가토 사장이 판매 창구에서 한결같이 듣는 이야기는 “날이 잘 안 든다”는 불만이었다.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대학 시절 두꺼운 전공서적을 뒤지던 가토 사장은 소비자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스테인리스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일본에 있는 철강회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찾아다녔다. 그러나 “기야가 원하는 주문량으로는 제조에 들어갈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가토 사장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해외 철강업체들까지 뒤진 끝에 오스트리아의 한 회사로부터 공급약속을 받아냈다. 새 스테인리스강을 사용한 부엌칼은 기존의 강철 부엌칼을 빠른 속도로 밀어내며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이때 기야가 내놓은 ‘에델바이스 시리즈’는 지금도 기야의 최대 효자상품이다.

부엌칼의 올바른 사용법 등을 보급하기 위해 적극적인 강연활동도 하고 있는 가토 사장은 “스테인리스강 칼은 잘 들지 않는다”는 말이 아직도 가끔 나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강철 칼은 날이 무뎌지면서 녹이 슬기 때문에 손질을 한다. 하지만 스테인리스강 칼은 녹이 슬지 않기 때문에 손질을 하지 않는다. 겉보기에 반짝반짝 빛이 나더라도 갈고 닦지 않으면 안 된다.”

비단 칼뿐 아니라 기업경영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가토 사장은 말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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