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측 “돈 안받으면 호텔할인권-와인 이용을”

  • 입력 2007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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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단 “李회장, 정치-법조인 로비지시” 문건공개

삼성측 “내부 문건 맞지만 회장 지시사항 아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정치인과 법조인들을 상대로 현금 대신 호텔 할인권과 와인 등을 이용한 로비를 지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4일 공개한 ‘회장 지시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호텔 할인권을 발행해서 돈 안 받는 사람(추미애 의원 등)에게 주면 부담 없지 않을까? 금융관계, 변호사, 검사, 판사, 국회의원 등 현금을 주기는 곤란하지만 호텔 할인권을 주면 효과가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적혀 있다.

A4 용지 3장 분량의 이 문건에는 “와인을 잘 아는 사람에게 와인을 주면 효과적이니 따로 조사해 볼 것. 아무리 엄한 검사, 판사라도 와인 몇 병 줬다고 나중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글도 있다.

문건에는 또 “참여연대 같은 NGO(시민단체)에 대해 우리를 타깃으로 해를 입히려는 부분 말고 다른 것에 대해서는 몇십억 원 정도 지원해 보면 어떨지 검토해 볼 것”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다.

이 문건들은 1997∼2004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근무하면서 법무팀장 등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보관하고 있던 것으로 김 변호사는 지난달 29일 사제단을 통해 △임원 명의 차명계좌를 통한 삼성의 비자금 조성 △삼성의 거액 회유 시도 의혹 등을 제기했다.

문건 작성 일시는 2003년 11월 12일과 같은 해 12월 29일로 각각 기록되어 있다.

사제단은 “이 문건은 이 회장이 공식회의나 자택에서 사장단에게 지시한 내용을 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가 정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 변호사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호텔 숙박권 50여 장을 회사에서 받아 지인들에게 돌렸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이에 대해 “그룹 내부 문건으로 보인다”면서도 “이 문건이 ‘이 회장 지시사항’이라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삼성 관계자는 “문건 내용은 읽어 보면 알겠지만 회장의 지시사항이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 하면 어떨까’ 하는 회장의 생각이나 말씀”이라며 “실제로 지시를 할 때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딱 부러지게 하는 게 회장의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제단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 재판과 관련해 “재판장에게 30억 원을 주라는 지시가 (김 변호사에게) 내려왔는데 김 변호사가 하지 않았다”며 삼성 측의 금품 로비 시도 의혹도 제기했다.

사제단은 “5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성당의 2차 기자회견에 김 변호사가 직접 참가해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상무가 어떻게 재산을 모았는지, 삼성에버랜드 CB 저가 발행 사건 수사과정에서의 증언 조작 과정 등을 상세하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김 변호사에 대한 대응 방안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다”며 “모든 폭로가 끝나면 종합적으로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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