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당을 찾아 나선 31명의 지점장들

  • 입력 2007년 4월 26일 16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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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29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21층 강당.

김종열 하나은행장이 새로 발령받은 지점장들에게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만년필을 하나씩 건네줬다. 스스로 좋은 장소를 찾아 지점을 내는 '셀프-디자인 공모 영업점장제'의 첫 대상자로 선발된 지점장들이었다.

한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만든 두툼한 보고서도 한부 씩 주어졌다. 보고서에는 입지 선정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와 추천 후보지 등 극비정보가 들어있었다.

점포 위치 선정부터 내부설계, 인테리어, 개설까지의 전권을 부여받은 지점장들은 보고서와 계약서에 서명할 만년필을 들고 전국으로 흩어졌다.

명당을 찾아 떠난 31명의 지점장들은 1년 후 어디에 자리를 잡았을까.

●발품 팔아 지점터 물색

지방으로 발령이 난 5명을 제외한 26명 중 7명이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를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7명 중 한 명이 주광숙(42) 대치중앙지점장. 그는 서울 시내를 샅샅이 훑다가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을 보면서 '학원을 주 타깃으로 삼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학원 1번가'로 알려진 강남구 대치동을 후보지로 정한 뒤 6개월 여동안 매일 대치동의 부동산 중개업소, 학원 등을 돌며 시장 조사를 했다. 그는 "300개가 넘는 학원의 위치, 규모를 파악하면서 '대치동 학원 지도'를 직접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점 자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괜찮아 보이는 곳은 이미 다른 은행 지점이 들어와 있었다. 수개월 동안 건물주를 설득한 끝에 간신히 학원 건물 내에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부유층이 몰리는 강남구 청담동에는 국내 최초로 여성 VIP 전용 지점이 생겼다.

장정옥(42) 청담 에비뉴 지점장은 10년 동안 프라이빗뱅킹(PB)을 담당한 경력을 살려 청담동에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지점을 열었다. 올 2월에 개점한 이 지점은 현대화가의 미술작품, 미니바, 개인 대여금고, 파우더 룸을 갖춰 화제가 됐다.

●신도시 주민을 잡아라

26명 중 11명은 신도시의 대규모 아파트 입주지에 지점을 냈다.

지난해 9월 경기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지점을 낸 한지원(41·여) 지점장은 '아파트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지도를 들고 다니며 지역 주부들의 동선을 유심히 살폈다. 한 지점장은 주부들의 시선을 끌기위해 점포 앞에 15평 규모의 화단과 벤치를 만들었다. 점포내에는 주부들이 모여 수다를 떨 수 있는 '커뮤니티 룸'을 설치했다.

아파트 관리비를 이체하는 고객이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일정 비율을 부녀회 발전기금으로 돌려주는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땀흘린 만큼 실적도 좋아

박재하(44) 지점장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재개발 지역을 담당한 경험을 살려 아파트 재건축이 진행 중인 강동구 암사동에 25평짜리 임시 점포를 냈다. 박 지점장은 "재건축이 완료되면 지역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영등포구 여의도동 서울국제금융센터(SIFC) 등 대규모 개발이 예정된 부지 인근에도 지점이 들어선다.

조병제 하나은행 가계영업그룹 부행장은 "개점 6개월 후 실적을 분석한 결과, 이들의 실적이 전년도 발령 지점장들보다 21% 정도 좋았다"며 "앞으로 이 제도를 발전시키는 방안을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원재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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