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모빌리에 에 크레아티비타

  • 입력 2007년 4월 25일 02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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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디자인에 강한 이탈리아 가구업체가 올해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내놓은 핵심 키워드는 ‘가구는 상상력’이다. 이탈리아어로 ‘Mobilie e creativita’다.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극대화한 고가(高價) 제품으로 세계 고급 가구시장을 주도하겠다는 뜻이다.

18일부터 23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가구박람회에서 만난 이탈리아 가구업자들은 중국산 가구의 위협을 말하고 있었다. 가구 판매업자 엠마누엘라 메롤리 씨는 “이탈리아 사람들도 중국산 가구를 사고 있다”고 말했다. 소파 제작업자 파우스트 콜롬보 씨는 “중국 탓에 중저가(中低價) 제품을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이탈리아 중저가 가구 회사 상당수가 중국 탓에 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상상력에 승부를 건 회사들은 중국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고가 제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유명 디자이너 주세페 비가노 씨는 “중국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디자인 능력은 오랜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서 나오며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한다. 지난해 디자인을 대충 바꿔서 올해 내놓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 업체가 아무리 이탈리아 디자인을 모방해도 이탈리아 디자이너의 상상력을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소비자를 흥분시키는 제품을 내놓고 있다고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은 자랑했다. 소비자들이 흥분해서인지 5000만 원짜리 소파가 세계의 부자들에게 팔리고 있었다.

중국이 중저가 제품을 차지하고 이탈리아가 고가 제품을 차지하는 세계 가구시장의 모습은 전자제품 자동차 선박 등 다른 공산품과 유사했다.

중국과 선진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에 처한 한국 제조업의 활로는 무엇일까.

에이스침대 안성호 사장은 “첨단기술로 만든 매트리스와 비가노 씨의 디자인을 결합한 침대 ‘필로’를 이번 전시회에 내놓았다”고 말했다. 가격이 700만 원에 이르지만 영국과 프랑스 업체들이 많이 구매했다고 한다. 에이스의 첨단기술과 이탈리아 디자인의 화학적 결합이 유럽시장 진출의 길을 연 것이다.

2년 전 밀라노에 디자인연구소를 세운 삼성전자도 비슷한 전략을 펴고 있었다. 삼성이탈리아디자인연구소 김홍표 소장은 “이탈리아는 가구나 패션 등 아날로그 디자인 분야에서 탁월하다. 그러나 이탈리아 아날로그 디자인과 우리의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디자인에선 우리가 앞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결합으로 나온 보르도 TV는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구승회 제일기획 이탈리아지점장은 “올해부터 이탈리아의 젊은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삼성 디자인상을 시상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우수한 젊은 디자이너들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에이스침대나 삼성전자가 이탈리아보다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의 강점과 상대방의 강점을 결합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구 지점장은 필자와 헤어지면서 “퇴근시간은 늘 자정을 넘긴다. 이탈리아 디자인을 이기려면 독하게 일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진정한 강점은 이탈리아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독한 근성’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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