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면도기, 그 끝없는 진화

  • 입력 2007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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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를 하지 않아 남는 시간을 혁명을 구상하는 데 쓴다.”

쿠바의 집권자 피델 카스트로는 과거 브라질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면도를 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후 미국의 방송인 바버라 월터스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수염을 기른 진짜 이유는 질레트 면도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남성의 수염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다.

체 게바라, 카스트로, 카를 마르크스의 수염이 ‘저항’을 나타냈다면 조니 뎁과 존 트래볼타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수염은 ‘남성이 갖는 가장 매혹적인 상징’으로 여겨졌다.

현대의 소비산업은 평생 면도하는 데 3000시간 이상을 쓰는 남성들을 위해 ‘기르고, 깎고, 다듬기’를 넘어 아예 털을 제거하는 제모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 T자형 면도기 혁명

인간의 면도 역사는 2만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동굴벽화에는 조개껍데기와 상어이빨로 면도하는 남성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면도용으로 추정되는 갈라진 돌도 발견됐다.

현재 대다수 남성들이 사용하는 수동형 T자 면도기는 19세기 말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살던 킹 캠프 질레트가 개발했다.

세일즈맨으로 매일 면도를 해야 했던 그는 면도날을 자주 갈아야 할 뿐 아니라 입 주위에 상처를 입히기 십상인 일자형 면도기에 불만이 많았다. 결국 그는 1903년 면도날을 쉽게 분리해 교체할 수 있는 T자형 안전면도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전기면도기는 1930년대에 처음 개발됐지만 소비자들이 전자제품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제대로 보급되지 못했다. 이후 1950, 60년대 들어 필립스와 브라운 등 제조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디자인과 성능이 빠른 속도로 향상됐다.

○ 면도기 춘추전국시대

전기면도기의 발전 못지않게 수동식 면도기 역시 진화를 거듭했다. 세계 수동식 면도기의 양대 산맥인 질레트와 쉬크는 △면도날 특수코팅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단위의 세밀한 연마기술 △인체공학적 설계를 도입해 피부친화형 면도기를 내놓고 있다. 1990년대 후반 3중 날 면도기가 나온 데 이어 최근엔 5중 날 면도기까지 출시된 상태다.

국내에서는 1955년 설립된 도루코가 면도기 분야의 ‘마이웨이’를 고수하며 외국 브랜드와 경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면도기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2100년경에는 면도날이 14개까지 들어 있는 고성능 면도기가 출현할 것으로 예측한다.

질레트 관계자는 “한번 제품을 구입하면 면도날만 교체하면 되는 수동 면도기의 특성상 일단 기술 개발에 뒤처지면 따라잡기 어렵다”며 “남성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신제품 출시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남성 수염의 성장 속도를 늦추는 화장품부터 전기침을 이용해 피부 속의 모낭을 파괴하는 영구 제모술까지 다양한 기법이 선보이고 있다.

○ 면도기의 선택 요령

면도에는 셰이빙크림 등을 이용하는 습식면도와 물기 없이 빠르게 할 수 있는 건식면도가 있다. 면도기 종류는 자동식 전기면도기와 면도날만 바꿔 사용하는 수동식 시스템면도기로 나뉜다.

전기면도기는 면도날이 회전하면서 수염을 깎는 ‘회전식’과 좌우로 움직이면서 깎아내는 ‘왕복식’의 두 가지가 있다. 필립스 제품으로 대표되는 회전식은 원형 회전날 2, 3개가 각각 돌면서 얼굴의 굴곡을 따라 입체적으로 면도해 준다. 절삭력이 비교적 약해 수염이 적고 곱슬인 사람에게 알맞다.

왕복식은 브라운이 즐겨 쓰는 방식으로 긴 날 2, 3개 정도가 좌우로 오가며 수염을 깎는다.

부드러운 면도보다 구레나룻을 다듬는 것처럼 멋 내는 면도를 할 때 적당하다. 절삭력이 좋아 수염이 많고 뻣뻣한 직모인 사람에게 맞다.

전기면도기는 건식으로만 가능하다는 상식을 깨고 얼마 전부터는 물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습식용 전기면도기도 등장했다. 필립스의 스마트터치XL은 방수기능이 있어 샤워 도중 면도가 가능하다.

전기면도기는 내장된 솔로 수염 찌꺼기를 제거한 뒤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2년에 한 번 정도 날과 안전망을 교체해야 한다. 면도날의 수가 점점 많아지는 수동식 면도기는 질레트, 쉬크, 도루코 등이 대표적인 브랜드다. 수동식 면도기는 면도 후 뜨거운 물로 면도날에 묻어 있는 면도용 크림과 수염을 깨끗하게 제거해야 한다. 개인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2∼4주에 한 번꼴로 면도날을 교체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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