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불면’… 정부 ‘불감’… 미래 ‘불안’

  • 입력 2007년 3월 2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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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에 대해 ‘단기적 위기론’을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과거와 같은 토대 위에서 단순한 불안감을 나타내는 것은 한국 경제의 현실적인 위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따른 것이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제1차관은 22일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최근 경제계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는 ‘한국 경제 위기론’에 대해 이렇게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김 차관의 발언을 무게 있게 받아들이는 경제 전문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같은 날 쏟아진 각종 위기신호와 지표들도 정부 관계자들의 낙관론을 무색하게 했다.

○ 민간 경제연구소 위기 잇단 경고

22일 나온 현대경제연구원의 ‘중진국 함정에 빠진 한국 경제’ 보고서는 지금과 같은 한국의 성장잠재력, 산업구조로는 선진국들을 ‘영원히’ 따라잡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과 비슷한 인구의 선진국들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접어들었던 10여 년 전에 내수(內需)와 수출이 균형을 이루거나 내수 위주의 성장을 했다고 이 보고서는 설명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7.8%로 수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10여 년 전의 선진국보다 성장 전망이 밝지 않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이 이날 내놓은 ‘한국의 주택담보대출, 프라임도 안심할 수 없다’는 보고서는 코앞에 닥친 금융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프라임(우량) 대출에 해당하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서도 미국의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모기지 부실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시중은행들이 대출자의 신용등급보다 담보를 보고 대출해 준 사례가 많아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 비우량 대출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또 2004년 이후 증가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63조8000억 원이며 이 중 49조6000억 원의 대출에 대해 올해부터 원리금 분할상환이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 나라 살림은 적자, 기업 환경은 겨울

한국 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나라의 살림살이도 악화됐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정부 기준 관리대상수지 적자 규모는 2005년(8조1000억 원)보다 큰 10조8000억 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관리대상수지란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의 흑자를 빼고 공적자금상환 원금을 더한 것으로, 실질적인 나라 살림살이를 보여 주는 지표다.

관리대상수지는 2003년 1조 원 흑자에서 2004년 4조 원 적자로 돌아선 뒤 적자 규모가 매년 확대되고 있다.

나라 살림뿐 아니라 기업들의 형편도 좋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최근 기업의 체감경기 현황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기업 중 65.1%는 현재 경기 상황을 계절로 봤을 때 불경기를 뜻하는 ‘겨울’이라고 답했다.

‘가을’(20.2%), ‘봄’(14.0%) 등이 뒤를 이었으며 호(好)경기를 의미하는 ‘여름’이라는 응답은 0.7%에 그쳤다.

기업들의 채산성도 악화되고 있다. 1년 전보다 ‘채산성이 나빠졌다’는 기업이 절반 수준인 49.5%나 된 반면 ‘채산성이 좋아졌다’는 응답은 9.8%에 그쳤다.

경기 회복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부정적인 진단을 내놨다. 향후 6개월 내 경기상황이 ‘지금과 비슷할 것’이라는 응답이 55.4%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23.4%였다.

○ 정답은 ‘성장잠재력 확충’

조원동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은 이날 국정브리핑 기고에서 “경제위기론이 패배감이나 자기 폄훼로 발전해서는 안 되며 건설적으로 사회적 중지(衆智)를 모으는 데 보탬이 돼야 한다”며 최근 김영주 산업자원부 장관 등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이 제기한) 위기론이 4∼6년 앞을 내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종래의 ‘○월 위기설’과는 차이가 있으며, 경제의 성장속도 둔화와 고령화 저(低)출산 추세 속에서 잠재성장률의 감퇴를 걱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되는 측면도 있다”며 일정 부분 동의를 표시하기도 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국이 선진국과의 격차를 최대한 빨리 따라잡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성장잠재력 확충’에 있다고 조언했다. 현재 4%대에 머물고 있는 성장잠재력을 6%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내수 부분을 집중 육성하는 한편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기업의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양대 예종석(경영학) 교수는 “경제위기론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경제적인 것보다 ‘정치적 해석’에 기인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며 “정부가 민간과 마찬가지로 ‘성장잠재력 확충’을 얘기하더라도 기업과 개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느냐가 관건이다”라고 지적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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