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회사 강남 혈전…유흥업소에 수억씩 로비

  • 입력 2006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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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KT&G 영업담당 직원은 서울 강남 지역의 한 유명 나이트클럽에 “KT&G 담배를 업소에서 팔아 달라”고 로비를 하기 위해 나이트클럽 주인을 만났다. 그는 “이 업소 좌석이 700석이니 1년에 1억5000만 원으로 계약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업주는 “외국 담배회사 측이 1년 계약에 2억5000만 원을 제시해서 벌써 계약했다”고 답했다. 이후 이 업소에는 특정 외국산 담배회사의 제품만 팔렸다.

서울 강남경찰서가 강남 일대 유흥업소를 상대로 거액의 판촉비를 뿌린 KT&G 남서울본부 직원들을 담배사업법 위반혐의로 적발하면서 담배회사들 간에 강남의 유흥업소 시장을 둘러싼 불법적인 판촉행태가 드러나고 있다.》

담배 판촉 전쟁은 담배회사들이 강남 유흥업소에 뿌린 연간 수백억 원대의 판촉비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경찰은 외국 담배회사들도 강남 유흥업소들에 돈을 건넨 증거를 잡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유흥업소의 ‘봉’ 담배회사=강남 일대 유흥업소들에는 “담배회사 돈은 ‘눈먼 돈’이니 많이 먹고 봐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경찰조사 결과 KT&G 남서울본부가 담배 판촉을 위해 연간 100억여 원을 판촉비로 쏟아 부었으며 30억여 원은 강남 유흥업소로 흘러간 것으로 드러났다.

담배업계에 따르면 2002년 KT&G가 민영화되기 전 강남 일대 유흥업소 전체 물량의 90%를 외국 담배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강남 시장에서 밀려난 KT&G는 2003년 민영화가 된 뒤 유흥업소 판촉 로비 활동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시장점유율이 외국 담배와 50 대 50으로 팽팽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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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담배전쟁 중=담배회사들이 강남의 유흥업소에 억대 로비를 해가며 영업하는 이유는 강남의 시장 규모와 유행의 선도성 때문.

강남 지역을 맡고 있는 KT&G 남서울본부는 KT&G의 전국 담배 매출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13개 지역본부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규모다. 외국 담배를 포함한 전체 담배 매출에서 강남은 전국 담배소비의 10% 이상으로 추정된다.

담배 회사들의 로비 방법은 대형 유흥업소와 중소형 업소에 따라 다르다. 수용 인원 1000명에 가까운 대형 나이트클럽, 룸살롱 등은 담배회사 직원이 직접 로비를 한다.

치열한 담배회사 간 경쟁 때문에 다른 회사와 계약이 된 유흥업소 업주는 만나기 힘들다. 그래서 처음에 웨이터에게 현금 20만∼30만 원과 담배 30∼40갑을 건넨다. 업주를 만나면 담배회사 측은 기존에 계약된 담배회사보다 많은 돈을 주겠다고 제안해 계약을 성사시킨다. KT&G는 2000여 명이 수용 가능한 D나이트클럽에 5억 원을 줬다.

중소규모 유흥업소에는 담배회사가 고용한 아르바이트생들이 발로 뛴다. 이들은 담배회사가 지정한 대주업자의 전화번호가 찍힌 명함을 매일 유흥업소에 돌리고 다닌다. 업주는 이 번호를 보고 전화하면 10갑에 2만5000원 하는 담배를 2만2000원 정도에 살 수 있다. 담배회사가 주 거래 대주업자들에게는 1만5000원 정도로 담배를 공급하기 때문.

담배업계의 한 관계자는 “담배소매인으로 지정되지 않은 유흥업소가 불법적으로 담배를 파는 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강남의 담배전쟁은 끝나지 않고 결국 그 부담은 소비자에게 넘겨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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