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진정한 ‘패자 부활전’

  • 입력 2006년 8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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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표정이 밝다. 젊은이다운 활기와 풋풋함이 느껴진다. 어제 아침 동아일보 사회면에 실린 남녀 대학생들의 사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인도에서 열리고 있는 소프트웨어 공모전 ‘2006 이매진컵’ 결승전에 참가 중이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소프트웨어 월드컵’으로 불릴 정도란다.

이매진컵에 출전한 한국대표는 한성대 박완상, 국민대 이해리, 동국대 정혜화 씨 등 세 명. 해외 경쟁자들과 비교하면 ‘가방끈’이 길진 않다. 가정형편이 넉넉한 것 같지도 않다. 요즘 웬만한 대학생이면 다 하는 해외연수는 물론 해외여행 경험도 없다.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직장생활을 하다 늦깎이 대학생활을 한다.

이들의 스토리를 접하면서 가슴이 짠해졌다. 간판이 아니라 열정과 실력만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돼 세계의 수재(秀才)들과 겨루는 인간 승리다. 바람직한 ‘패자(敗者) 부활전’의 모습이기도 하다. 결승전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만 설사 그렇지 못해도 충분히 아름답다.

한국의 여러 집단 가운데 비교적 국제경쟁력이 높은 대기업의 조직문화도 패자 부활을 적극 장려한다. 회사 발전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의 출신대학은 의외로 다양하다. 해외를 포함해 모두 47명의 부회장 및 사장 가운데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빅3 대학’ 출신이 아닌 사람이 전체의 40.4%인 19명에 이른다. 9명은 지방에서 대학을 나왔다.

김쌍수 LG전자 부회장은 1969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했다. 창원 부산 등 지방에서 현장근무만 한 그가 서울 본사로 올라온 것은 입사 34년 만인 2003년이었다. 어디에 있든 묵묵히 최선을 다해 성과를 올리면 기회가 온다는 점을 보여줘 눈길을 끌었다.

평생을 순탄하게만 보낼 수 있는 행운을 누리는 사람은 드물다. 한두 번은 돌부리에 걸리고 넘어진다. 더구나 인생과 세상에 대한 번민이 많은 ‘젊은 날의 초상(肖像)’은 반듯한 모범생과는 자주 거리가 있다.

사회에 나온 뒤의 역량과 성취는 학교 성적과는 별개다. 공부를 잘하면 사회생활의 출발에서 일단 유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스무 살 안팎 어느 한 시기의 학업과 일에서의 능력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최소한의 조직생활을 해보면 안다.

경쟁력 있는 조직일수록 학연 지연 등 사적 연고(緣故)에 구애받지 않는다. 유일하게 인정되는 인연은 일을 통해 맺어진 직연(職緣)과 이 과정에서 생겨난 신뢰다. 동창회나 향우회도 아닌데 ‘꿩 잡는 매’가 필요하지 학벌이나 고향을 왜 따질까.

좌절을 맛본 당사자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이매진컵에 나간 학생들이 세상을 원망하고 남 탓만 했다면 오늘의 영광은 없었을 것이다. 비명문대 출신으로 대기업 CEO까지 오른 분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탕주의나 벼락출세, 희생양 찾기가 자주 눈에 띄는 세태다. 진정한 패자 부활전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개인은 ‘자기 책임’의 무게를 느끼면서 항상 새로 출발하고 사회는 이를 자극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건강하다. 우리 사회가 막가지는 않고 있다는 안도감을 갖게 한 세 명의 한국 젊은이가 대견하고 고맙다.

권순활 경제부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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