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증자 한달만에 부도…증자액 459만원…“증자가 짜증나”

  • 입력 2006년 7월 1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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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자(增資)를 통해 개인투자자 돈을 잔뜩 끌어 모은 기업이 한 달 만에 부도를 낸다.’

‘유명 연예인들이 수십억 원대 유상증자에 참여할 것이라고 공언했던 한 코스닥 기업은 증자에 실패해 투자자들을 실망시킨다.’

최근 증자에 나섰다가 투자자들만 골탕 먹인 일부 코스닥 기업의 증자 실패사례다.

유상증자 시장이 멍들고 있다.

최근 몇몇 기업이 회사 사정을 속인 채 증자를 시도하면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유상증자는 기업이 기존 주주들을 대상으로 새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말한다. 투자자와 기업을 직접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증자 시장이 혼탁해지면 증시 전체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가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개인 투자자 멋 모르고 참여했다 낭패

최근 부도가 난 중견 휴대전화업체 VK. 이 회사는 불과 한 달 전에 유상증자를 실시했고 118억 원의 자금을 끌어 모았다. 문제는 이 회사의 증자에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다.

증자를 할 당시 VK는 이미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대형 기관투자가들은 어렴풋이 이런 소문을 듣고 있어 투자를 꺼리는 상황이었다.

결국 딱히 돈을 대줄 전주(錢主)를 찾지 못한 VK는 아예 기존의 모든 주주들을 대상으로 증자에 나섰다.

VK는 개인투자자 비중이 80%가 넘는 회사다. 회사 사정을 잘 모르는 개인 주주들이 멋모르고 증자에 참여했다가 결국 한 달여 만에 회사가 부도가 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주주들은 주당 810원을 내고 증자에 참여했지만 12일 정리매매에 들어간 이 회사 주가는 60원으로 곤두박질쳤다.

○ “연예인 참여” 공시… 알고 보니 한 푼도 안내

엔터테인먼트 회사 팬텀은 지난달 유명 연예인들이 대거 유상증자에 참여한다고 공시했다.

임창정 김제동 류승범 등 소속 연예인 9명이 3억 원씩 회사에 돈을 댄다는 소식이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연예인이 코스닥 상장 기업의 주주가 된다’며 이들의 사진까지 큼지막하게 싣기도 했다.

또 한 증권사는 “팬텀이 증자를 바탕으로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보고서를 내며 맞장구쳤다.

그러나 이 회사가 실제 증자를 실시한 5일 회사에 들어온 자금은 고작 459만 원이었다.

연예인들은 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증자가 실패한 이후 이틀 동안 팬텀 주가는 25% 가까이 급락했다. 유명 연예인들의 증자를 호재로 판단하고 이 회사 주식을 산 투자자들만 큰 손실을 입은 것이다.

○ 기업 솔직해지고 투자자는 ‘묻지마 투자’ 삼가야

전문가들은 증자 시장이 제 기능을 되찾기 위해서는 기업과 투자자 모두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선 증자를 하는 기업은 주주들에게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VK는 증자를 시도하면서 회사의 어려운 사정은 공개하지 않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위해 증자를 하는 것”이라고 일부 언론에 밝혀 투자자를 속였다는 비난을 받았다.

키움증권 장영수 연구원은 “증자에 참여하는 일반인들은 기업의 속사정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적어도 돈을 대주는 주주들에게만큼은 기업의 현실을 솔직히 알려주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

투자자들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증자를 할 때 기업 사정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무조건 돈을 대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실적이 최악이었던 바이오 기업들이 대거 유상증자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바이오 기업이면 돈이 된다’며 무작정 투자에 나섰던 ‘묻지마 투자’ 덕분이었다.

동양종합금융증권 최현재 연구원은 “단기 수익을 노리고 투기적으로 증자에 참여하는 ‘묻지마 투자’가 사라져야 증자 시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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