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갔더니 “못나갑니다”…금융계-관가 ‘출국금지’ 공포

  • 입력 2006년 6월 2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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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처의 A 사무관은 최근 해외 연수를 떠나기 위해 인천국제공항에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어렵사리 따낸 연수 기회라 설레는 마음으로 공항에 도착했지만 정작 그를 기다린 것은 출국할 수 없다는 통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외환은행 매각 수사 대상에 포함돼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져 있었던 것.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등 2003년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 있는 부처의 공무원과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출국금지 공포에 휩싸여 있다.

검찰에서 출국금지 사실을 당사자에게 통보하지 않기 때문에 ‘나도 혹시…’라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 더구나 사무관 등 실무자급에게까지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것에 대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금까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 출국금지 조치를 받은 인물은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이강원(전 외환은행 행장) 한국투자공사 사장 등 고위급 핵심 인사 6, 7명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재경부 관계자는 “실무자 선까지 출국금지 조치를 내린 것을 보면 생각보다 수사 범위가 광범위한 것 같다”며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아 봐야 출국금지 조치 여부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출국금지 업무처리규칙에 따르면 출국금지 대상자는 ‘범죄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자’로 규정돼 있다. 따라서 적어도 내사를 받고 있거나 피의자 신분인 경우에 대상자가 되며 참고인은 대상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다.

금융계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시중은행의 B 임원도 최근 해외출장을 떠나려다 공항에서 발목을 잡혔다.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이 임원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출국금지 조치 대상에 올라 있었다.

금융권은 특히 검찰이 수사 중인 외환은행 사건과 현대자동차 로비 사건이 모두 금융기관들과 관련이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C 임원은 “예상 못한 곳에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사안들이어서 관련 부서에 있었다면 누구든지 내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출입국관리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출국금지를 했을 경우 대상자에게 그 사실을 통보해 주게 되어 있으나 검찰은 개인적 이익이 아닌 사회적 이익이 걸린 수사일 경우 대부분 출국금지 사실을 통보해 주지 않고 있다.

또 중요한 출장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어 검찰청에 출국금지 여부 확인 요청을 하면 검찰이 알려 주거나 일시 해제하고 있지만 이를 활용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반면 최근 무사히 해외 출장을 다녀온 몇몇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검찰 수사에서 비켜나 있음을 확인했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외환은행과 현대자동차 수사가 장기화되고 확대되면서 출국금지를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든다”며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서라도 수사가 빨리 종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박현진 기자 witness@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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