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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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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회사 망하면 퇴직금 날린다
예금보호 상품에 돈을 맡기면 해당 금융회사가 파산하더라도 정부가 원금과 이자를 합쳐 1인당 5000만 원까지 지급한다. 그러나 퇴직연금은 예금보호 대상이 아니다.
퇴직연금은 사업장의 퇴직금을 관리하는 은행, 증권, 보험회사가 해당 사업장과 근로자를 대신해 예금, 적금, 보험, 수익증권, 채권 등을 사는 구조다. 실제로 금융상품을 사는 주체는 금융회사이기 때문에 예금보호가 안 된다는 게 예보의 설명이다.
예컨대 A사의 퇴직금 3억 원을 맡은 은행이 B사의 수익증권, C사의 예금, D사의 보험을 1억 원어치씩 샀는데 B사가 도산한다면 수익증권에 투자한 1억 원은 받지 못한다. 만약 B, C, D사가 모두 망한다면 퇴직금은 통째로 날아간다.
근로자로서는 퇴직연금 중 사업주가 지급을 책임지는 확정급여형(DB)이 그나마 낫다. 유사시에 사업주가 손해를 보기 때문. 반면 확정기여형(DC)은 곧바로 근로자에게 피해가 돌아온다.
퇴직연금에 가입한 중소기업 K사의 S 과장은 “수십억 원을 금융회사에 나눠 맡기는 사람은 보호하면서 근로자가 노후 대비를 위해 든 퇴직연금을 방치하는 게 나라가 할 일이냐”고 말했다.
○ 사정 모르는 중소기업만 가입
퇴직연금 가입이 의무화된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 50여만 개 가운데 4월 말 현재 6667개 사업장(5만5567명)만 퇴직연금에 가입했다. 이들이 맡긴 퇴직금은 774억2000만 원. 근로자 1인당 약 140만 원꼴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퇴직연금 가입 사업장은 최근 8000여 개로 증가했지만 그래도 가입률은 1.6%에 불과하다. 그나마 가입 사업장의 98%는 근로자 100인 미만 중소기업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산하 사업장은 거의 가입하지 않았다. ‘퇴직 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가입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강익구 국장은 “현 퇴직연금 제도는 수급권이 보호되지 않는 데다 세제 혜택도 미흡해 노후소득 보장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기획예산처는 퇴직연금 가입 실적이 저조하자 공기업을 대상으로 “퇴직연금에 가입하면 경영실적 평가 때 가산점을 주겠다”고 독려하지만 같은 이유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 정부, 퇴직연금 보호 엇박자
최장봉 예보 사장은 최근 “퇴직연금도 금융회사 파산 때 예금보호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보 박재순 보험정책실장은 “퇴직 근로자의 노후 보장을 강화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며 “미국은 연방예금보험법을 개정해 올해 7월부터 근로자 퇴직계좌에 대한 보호 한도를 10만 달러에서 25만 달러(약 2억3750만 원)로 증액한다”고 소개했다.
퇴직연금 주무 부처인 노동부 관계자는 “기존 퇴직보험도 보호가 되는데 퇴직연금을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예금자보호법 소관 부처인 재경부는 아직 법령을 고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재경부 추경호 금융정책과장은 “퇴직연금을 무조건 보호하는 것이 맞는지 판단이 안 선다”며 “시행 상태를 봐 가면서 예금보호 대상에 넣을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 보험회사 임원은 “퇴직연금을 보호한다고 해도 누가 보험료를 부담할지, 보험료율은 어떻게 정할지 등 과제가 적지 않다”고 했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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