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원대 지방세 탈루 외국계 회사들 적발

  • 입력 2006년 4월 25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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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회사들이 부동산거래를 하면서 수백억 원대의 지방세를 탈루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시는 25일 외국계 법인 13곳이 수천억 원대에 이르는 서울 시내 대형빌딩을 매입하면서 취득세와 등록세 등 지방세를 전혀 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이들에 대해 총 363억 원의 탈루세액을 추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취득세가 233억4000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등록세 91억6000만 원, 기타 38억9000만 원 등이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9~11월 외국 법인 총 126곳 가운데 대형빌딩을 매입한 20곳을 표본 선정해 세무조사를 벌였다. 외국 법인에 대한 지방세 차원의 세무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 최창제(崔昌濟) 세무과장은 "국제통화기금사태 이후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 규제가 완화되면서 외국 법인의 취득세와 등록세 탈루 의혹이 제기돼 세무조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이와 별도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스타타워 매각과 관련해 외국 법인인 론스타에 대해 1400억 원을 추징하기로 한 데 이어 뉴브리지캐피탈 등의 탈세를 조사 중이다.

▽해외 소재 페이퍼컴퍼니 이용해 탈세=이번에 적발된 외국 법인은 싱가포르투자청과 PCA코리아, ㈜로담코, ㈜ABM암로은행 등 13곳에 이른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들은 스타타워와 중구 남대문로 시티타워, 영등포구 여의도동 옛 한나라당사 등 20개 건물을 매입하면서 탈세를 했다.

론스타로부터 스타타워 빌딩을 매입한 싱가포르투자청이 167억 원(1건), PCA코리아는 102억 원(2건)을 각각 추징당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들 외국 법인은 고도의 법률자문을 거쳐 외국에 '페이퍼컴퍼니'(실체 없이 서류형태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만들어 이들 회사가 주식을 분산 소유하는 편법으로 취득세와 등록세 납부를 회피했다.

예컨대 외국 법인이 2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이들 회사가 국내 부동산 주식을 각각 50.99%와 49.01%를 보유한다. 이들 페이퍼컴퍼니 사이에는 상호출자 지분이 없어 주식을 합하지 않아도 된다. 발행주식의 51% 이상을 소유하고 기업경영을 지배하는 과점주주에게 부과하는 취득세를 피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서울시는 변호사와 세무사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외국 법인이 사실상 페이퍼컴퍼니의 경영권을 행사하는 주식의 실질취득자로 보고 탈루세액을 추징했다.

이밖에도 외국 법인들은 부동산을 취득한 뒤 임대관리 업무를 다른 업체에 위탁해 처리하거나 부동산 취득에 따른 거액의 컨설팅 비용을 취득 가격 신고에 누락시키면서 탈세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의 추징에 따라 이달 10일 현재 싱가포르투자청 등 9개 외국 법인이 217억 원의 탈루 세액을 납부한 상태다. 지방세 납부는 이달 말까지 해야 하며 납부한 뒤 90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서울시는 올해 상반기 중 대형빌딩을 매입한 외국 법인 40여 곳에 대해 추가로 세무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또 서울 25개 자치구에 퍼져 있는 외국 법인 취득 부동산 현황도 조사하기로 했다.

▽외국법인 탈세로 지방 재정 흔들=2004년 서울시의 지방세 세입 가운데 부동산 취득 및 등록세 세입은 약 3조 원. 전체 세입의 34.2%를 차지한다.

서울시는 부동산 거래에 따른 취득세와 등록세가 지자체 세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일부 외국 법인의 탈세가 증가할 경우 지방재정 확보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방세 전문가들은 외국 법인이 주식 취득 사실을 세무서에 신고할 의무는 있지만 이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할 의무는 없어 지자체에서 외국 법인이 과점주주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려대 이만우(李晩雨·경영학·한국세무학회장) 교수는 "현행법을 고치기보다 서울시 등 지자체가 외국 법인 탈루와 관련한 자문단을 구성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세피난처(법인의 실제 발생소득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에 본부를 두는 등 탈루 가능성이 있는 외국 법인이 부동산을 등기할 때 사전 인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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