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한국시위대 500여명 구금]“도심 마비” 38년만에 최루탄

  • 입력 2005년 12월 1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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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후 8시(현지 시간) 홍콩 컨벤션센터 앞에서 뿌연 연기가 치솟아 올랐다. 홍콩에서 38년 만에 등장한 최루탄이었다. 그 사이로 쇠파이프와 곤봉이 난무했다. 한국 시위대는 깃대를 창(槍)처럼 경찰에 겨누고, 경찰은 곤봉으로 맞섰다. 누군가 경찰 쪽으로 각목을 집어던졌다. 시위대 중 몇 명이 도로에 설치된 철망을 떼어 경찰에 밀어붙였다. 홍콩 도심은 곧 마비상태에 빠졌다. 이날 오후 4시에 시작된 시위는 제6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폐막일인 18일 대규모 강제연행으로 막을 내렸다.》

○ 한국 시위대, 폐막 앞두고 과격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등 한국 시위대 1500명은 이날 오후 외국 시위대 200여 명과 함께 ‘반(反)WTO’를 외치며 빅토리아공원에서 각료회의장인 컨벤션센터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시위가 가열된 것은 오후 7시부터. 컨벤션센터 앞 도로에 모인 한국 시위대는 깃대, 쇠파이프 등으로 경찰 저지선 돌파를 시도했다. 일부는 인도와 도로를 구분하는 철망을 떼 경찰 쪽으로 밀어붙였다.

경찰은 저지선이 뚫릴 조짐이 나타나자 최루액과 함께 최루탄 10여 발을 쏘며 대응했다.

이에 앞서 홍콩 당국은 현지 방송을 통해 주민들에게 대피할 것과 시위장 접근 금지를 요청했다.

700여 명의 한국 시위대는 경찰과 밤샘 대치를 하다 18일 오전 3시 5분 경찰에 연행되기 시작했다. 연행은 이날 오후 2시 40분까지 계속됐다.

시위 과정에서 경찰과 시위대 양측에서 부상자가 나왔으며 시위대 측은 홍콩 경찰이 구타 등 ‘인권침해’를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연행, 처벌은 어떻게

앰브로즈 리 홍콩 보안국장은 17일 밤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시위대가 폭력수단을 통해 홍콩의 질서를 훼손했으며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어 열린 주(駐)홍콩 한국영사관과 홍콩 경찰, 농민대표 등의 협상 자리에서도 홍콩 당국은 강경 방침을 확인했다. 나쁜 선례를 남길 수 있어 엄정한 법 집행이 불가피하다는 것.

홍콩 경찰은 도심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시위대의 사진, 동영상 등 불법 시위 증거를 상당히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쿤퉁 경찰서, 쿤퉁 법원 등에 분산 수용돼 있는 연행자에 대해 이틀 내 재판을 거쳐 사법 처리할 방침이다.

시위대는 폭력 정도에 따라 강제추방, 벌금 및 강제추방, 구속과 실형 등을 받을 수 있으나 대부분 추방될 전망이다. 하지만 시위 가담 정도가 심한 일부 한국인은 일단 정식 구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이미지 실추 우려

조환복(趙煥復) 주홍콩 한국 총영사는 “아직 연행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주홍콩 미국 영사관에 스프레이로 반미(反美), 반WTO 구호를 쓰는 등 불법 행위가 드러난 사람은 추가로 연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시위대의 과격한 모습은 홍콩 방송은 물론 CNN 등 다른 해외 언론에도 생중계됐다.

한국 총영사관 관계자는 “이번 시위로 다국적 기업의 본부가 많이 모인 홍콩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크게 떨어지게 됐다”며 “이래서야 주요 기업의 아시아 본부를 한국에 유치할 수 있겠는가”라고 걱정했다.

홍콩=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시위한류? 삼보일배 관심, 마지막날 폭력돌변에 싸늘▼

평화적인 시위로 홍콩 시민들의 공감을 얻었던 한국인 원정 시위대가 17일 폭력시위를 벌인 이후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하게 변하고 있다고 홍콩 언론이 18일 전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기간 중 홍콩 시민들은 삼보일배(三步一拜), 촛불집회, 해상시위, 풍물패 공연 등 한국 시위대의 다양한 시위 방법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시위대에 음식물과 방한용품을 전달한 시민도 있었고 일부 대학생은 16일부터 동조 단식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드라마 ‘대장금’의 한류 바람을 이어갔다는 평가가 있었을 정도.

하지만 시위가 폭력 양상을 띠면서 반응은 냉담해졌다. 홍콩 언론들은 일제히 과격시위 엄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 시위대에 우호적 입장을 보였던 밍(明)보도 “과격 폭력시위로 홍콩 시민을 실망시켰다”며 “홍콩 시민들은 이들에 대한 구속, 출국금지를 포함한 단호한 조치를 지지하고 있다”고 18일 보도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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