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경영]품질은 유럽수준, 가격은 중국수준?

  • 입력 2005년 9월 22일 03시 02분


요즈음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관심이 많다. 그런데 브랜드가치에만 관심이 있는 경영자는 경박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브랜드가치는 시장에서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나 결과이기 때문이다. 대신 원인이나 이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기업은 브랜드가치라는 결과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 가기 위한 필요조건인 제품의 신뢰성을 충족시켜 나가는 과정인 품질경영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최근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세계 100대 브랜드’에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가 선정되었다. 삼성전자는 소니를 추월하며 20위에, 현대자동차는 닛산을 앞질러 84위에 그리고 LG전자도 97위를 기록하였다. 이는 세계시장에서 이들 제품의 품질과 상품력에 매력을 느낀 소비자들이 박수를 보낸 결과이다.

더 높은 브랜드 가치를 만들고 더 많은 기업이 100대 브랜드에 진입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해답은 이면의 품질경쟁 능력, 즉 신뢰성이 있고 내구성이 높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가는 데에 있다.

필자는 지난해 5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열린 세계 자동차 연구자모임에서 받았던 축하인사를 잊지 못한다. 당시 세계적인 자동차품질평가기관(J D Power)이 발표한 품질조사 결과 예상을 뒤엎고 현대차 쏘나타가 도요타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가 35억 달러로 일본의 닛산을 앞질러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면 이러한 브랜드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품질경영을 위한 도구로는 불량률을 %단위에서 PPM(Part Per Million: 100만 개 중 1개)으로 바꾼 100PPM 품질혁신운동이 있다. 이는 우리 기업들에 불량의 원인을 사전에 없애자는 정신혁명운동이자, 100만 개 중 100개 이하의 불량률을 유지하고자 하는 품질혁신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1995년부터 10년간 8600개 기업이 동참하였고, 1000여 개 기업들이 품질인증을 받았으며 부품산업의 국제경쟁력제고에 커다란 공헌을 해왔다. 이 운동은 100만 개 중 9개 이하의 불량률을 목표로 하는 싱글PPM 품질혁신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6시그마 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GE에 의해 주도된 6시그마운동은 불량의 원인을 없애 최종 불량률의 수준을 100만 개 중 3,4개 이하로 유지하는 수준의 품질혁신경영을 말한다. 이는 99.99966%의 합격률 정도가 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포스코, LG화학 등 유수 대기업에서 6시그마 품질혁신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면 품질경영은 품질혁신운동이나 시스템만 도입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제도만 도입하고 단기적으로 비용만 지불한 기업들도 많다. 획기적으로 품질개선에 성공한 기업들의 핵심요인을 필자의 사례분석경험을 통해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관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측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숫자로 평가하는 품질관리제도가 생활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현대차 관련 부품업체를 방문해보면 모든 부품업체의 작업장에 초기품질불량률의 목표치가 붙어있다. 매일 품질수준을 평가한다. 그러니 품질이 좋아지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평가가 품질경영의 핵심이다. 이제 계획과 실행에 돈 쓰던 시대에서 검사와 평가에 돈 쓰는 시대가 왔음을 실감하고 있다. 이를 필자는 무치(MUCI)라 부른다. 측정(Measurement)이 없으면 이해(Understanding)가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면 통제(Control)가 안 되고, 통제가 안 되면 개선(Improvement)이 없다는 뜻이다.

둘째, 품질경영은 품질을 중시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경영학 교과서에서는 전사적 품질관리(TQM·Total Quality Management)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나라기업에서는 TQM이 ‘최고경영자(Top Management)가 품질(Quality)에 마니아(Mania)가 되면 품질이 좋아진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흔히 현대자동차가 세계적 품질을 확보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을 정몽구회장으로 일컫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바로 최고경영자가 품질에 마니아가 되어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한다. 결국 품질혁신운동은 최고경영자의 품질철학의 크기만큼 기업혁신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도 달라진다.

셋째, 품질혁신운동은 의식개혁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건을 만들기 전에 우선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도요타자동차에서는 ‘모노쓰쿠리(물건만들기) 전에 히토쓰쿠리(사람만들기)’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오늘날 많이 도입되고 있는 6시그마운동의 도입에 실패한 기업들을 분석해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6시그마의 품질의식을 가지게 하는 이른바 휴먼시그마(Human Sigma)에 실패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품질혁신운동은 우선 종업원들의 품질마인드를 혁신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품질은 들불처럼 번지는 마법의 순간을 나타내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속성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차의 초기품질평가가 우수했다는 사실이 세계의 자동차 유수기업들로 하여금 한국의 자동차부품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고 그 결과 한국이 자동차 부품의 생산기지로 각광받게 되었다. 또한 이는 중국인들의 한국차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중국내 올 1분기(1∼3월) 현대차의 시장점유율을 1위로 만드는 티핑포인트가 되기도 했다.

세계경쟁은 점차 격심해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해외에서 ‘품질은 유럽수준, 가격은 중국수준’으로 요구받고 있다고 한다. 또는 일본의 기술과 품질, 중국의 가격 사이에 낀 너트크래커와 같은 경쟁구조속에 있다고 한다. 최근 품질경영에서 보여준 우리기업들의 성적표는 일본을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징조로 보인다. 그럼에도 한국의 생산현장을 보고 돌아간 일본의 산업전문가들은 한국의 생산현장은 현재와 같은 노사구조하에서는 일본의 1950년에 비교될 정도라고 혹평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생산현장에서는 올바른 품질경영이 정착되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하는 목소리도 있다. 대신 노사관계만 정착되면 엄청난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 기업을 구성하고 있는 토지,노동,자본의 3대 자원은 더 이상 국제적인 원가경쟁력을 유지시켜주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제 저가격 개발도상국 기업이 아니라 품질로 승부를 거는 선진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 품질경영은 이제 1만달러 시대의 저가격 제품경쟁력의 패러다임을 2만 달러시대의 고품질 시장경쟁력 패러다임으로 이행시키는 원동력이다. 노사가 함께하는 품질경영으로 새로운 글로벌 시대의 주역으로 도약하는 우리 기업들을 기대한다.

김기찬

● 김기찬 약력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MIT IMVP(국제자동차프로그램) 연구위원

-한국평가연구원장

-서울대 경영학박사

-도쿄대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MIT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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