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기업인의 표상 피오리나, 실적부진으로 낙마

  • 입력 2005년 2월 10일 18시 18분


코멘트
‘세계 최고의 여성 기업인’으로 불리던 칼리 피오리나 HP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사진)가 9일 전격 사임했다. 이유는 실적 부진.

그는 취임 초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벌인 데 이어 2002년에는 주주와 중역들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190억 달러의 거액을 들여 컴팩 컴퓨터를 인수하는 등 5년 반 동안 ‘풍운아’처럼 살아 왔다.

그러나 취임 이후 63%까지 하락한 HP의 주가를 다시 끌어올리는 데 결국 실패하면서 지휘봉을 놓았다.

뉴욕타임스는 10일 HP 이사회가 작년 하반기부터 피오리나 회장의 경영전략에 대해 본격적인 우려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12일에는 전략 변경을 요청했으나 피오리나 회장이 이를 거절했고, 이에 따라 그를 배제한 채 열린 6일 밤 특별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7일 피오리나 회장의 사임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결국 피오리나 회장은 “경영전략 실천방법에 대해 이사회와 이견이 있었지만 그들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사임했다. 이로써 포천이 선정한 미국 500대 기업 가운데 여성 CEO는 7명만 남게 됐다.

피오리나 회장은 그동안 HP 공동창업자의 아들인 월터 휼렛을 포함한 주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부문별로 전면전을 벌여 왔다. 컴팩과 합병한 뒤 기업서비스 부문에서는 IBM, 개인컴퓨터 부문에서는 델, 디지털카메라에서 코닥, 복사기 시장에서 제록스와 각각 혈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 전략은 HP에 상처만 남겼다는 평가를 받으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피오리나 회장은 2003년까지 6년 연속 포천이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가’ 1위에 오르는 기록을 남겼다. 그의 성공가도는 여성 기업인들에겐 표상이 될 정도였다.

통신기업 AT&T에서 세일즈를 할 때 만난 남편 프랭크 피오리나 씨는 1998년 부인을 외조(外助)하기 위해 아예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다. 뛰어난 세일즈 실적을 보이자 미국 11대 기업인 HP는 창업 이래 처음으로 그를 외부에서 스카우트해 지휘를 맡겼다.

그러나 ‘슈퍼 세일즈우먼’ ‘의사소통의 명수’ ‘결단의 경영자’라는 그동안의 칭송에도 불구하고 HP의 주가는 내리막을 거듭했고, 2004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기업가’ 1위 자리를 멕 휘트먼 이베이(E-bay) CEO에게 빼앗겼다.

사임 소식이 전해지자 9일 HP의 주가는 7% 올랐다. HP는 그에게 퇴직수당으로 2100만 달러(약 215억 원)를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뉴욕=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