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나성린/국내서 돈쓰게 만들자

  • 입력 2004년 7월 9일 18시 54분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고 있는 우리 경제 불황의 주범은 투자와 소비를 포함한 내수의 침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기업의 총투자와 민간의 총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기업들의 국내투자와 국민의 국내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반면 해외투자와 해외소비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올해 1·4분기 국내 기업들의 국내 설비투자가 작년 동기에 비해 0.3% 줄어든 반면 해외투자는 31%나 증가했다. 그리고 민간소비는 올해 상반기 동안 작년 동기 대비 1% 줄어든 반면 해외여행 지출은 5월 말 현재 4억4000만달러, 15% 늘어나고 해외유학 및 연수비 지출은 2억2000만달러, 33%가 증가했다.

▼부유층 홰외지출은 급증세▼

따라서 내수를 살리려면 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하는 돈을 국내로 돌리도록 해야 하고 우리 국민이 해외에서 쓰는 돈을 국내에서 쓰도록 해야 한다. 특히 민간소비가 국민소득 창출에 기여하는 비율이 60% 가까이 되고 내년 상반기까지 국내소비가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작금의 경제상황에선 해외소비를 국내소비로 돌리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해외에서 돈을 쓰는 사람들은 주로 중산층 이상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 있는 사람이 국내에서 돈을 쓰게 하기 위해선 먼저 그들이 국내에서 돈을 안 쓰는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 그 이유는 첫째, 해외의 관광상품이나 휴양시설이 국내에 비해 저렴한 값에 훨씬 더 높은 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동남아 여행비용이 제주도 여행비용보다 싸다면 이왕이면 해외여행을 가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둘째, 국내에서 돈을 많이 쓸 경우 당장 과소비나 위화감 조성 등의 비난을 면하기 어렵고 일반 서민의 반발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국내 교육의 질이 열악하고 사교육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있는 사람들은 자녀들을 조금 비싸더라도 더 나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해외로 유학 보내는 경향이 높다. 넷째, 국내 정치 경제 상황이 불안하기에 비록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미래에 대한 보험으로 미국 캐나다를 포함한 해외에서 부동산을 매입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이 같은 해외투자액이 5월 말 현재 작년 동기에 비해 2억3000만달러, 83% 이상 증가했다.

따라서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해외에 나가 남의 나라 좋은 일 하지 말고 국내에서 돈을 쓰도록 하기 위해선 첫째, 저렴하고 수준 높은 국내 관광상품과 휴양시설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일례로 최근 해외 골프여행객이 급증해 한해 10만명 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이로 인한 해외지출이 관광수지 적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국민정서를 고려해 무조건적으로 골프산업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이미 국민 300만명이 즐기고 있는 골프산업의 육성과 규제완화 및 세금 인하 등을 통해 보다 많은 국민이 저렴하게 골프를 즐길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 일반 서민도 있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좀 더 너그럽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결국 부자들이 돈을 써야 서민들이 종사하는 서비스산업과 제조업이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가 살아나야 서민의 생활고도 완화될 수 있는 것이다.

▼소비살아야 일자리 늘어나▼

셋째, 급증하는 해외 유학경비를 줄이기 위해 하향평준화와 공교육의 황폐화를 초래하고 있는 현행 교육평준화제도를 개선하고 교육시장의 개방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있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을 재점검하고 최근 들어 비정상적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반(反)엘리트 반기업 정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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