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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17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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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發電)부문은 6개 자회사로 분리돼 공급자간 경쟁이 도입된 반면 하부 조직인 배전 부문은 지금처럼 독점 상태로 남게 돼 정부가 당초 의도했던 전기료 인하와 서비스 개선 등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결정은 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됐다는 오점을 남겼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요구로 정부 계획이 재검토됐고 노사정위가 처음으로 공기업 민영화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는 점에서 향후 정책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배전 분할 중단의 배경=한전의 배전부문 분할 계획은 1999년 1월 산업자원부가 발전 및 배전부문을 분할해 경쟁 원리를 도입하겠다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을 밝히면서부터 본격화됐다.
하지만 한전 노조가 2002년 2월 정부 방침에 대해 ‘급조된 민영화 결정’이라며 파업을 벌이는 등 강력히 반발한 데다 작년 초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배전 분할 방침을 재검토하라고 요구해 계획 자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노사정위에 배전 분할 방침을 의제로 채택할 것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노사정위 산하에 공동연구단이 결성된 뒤 지난달 31일 정부 계획을 중단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는 배전부문을 분할하면 전기료가 오를 수 있고 공급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어 국가 기간산업인 전력산업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작년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가 전력산업 민영화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일면서 노동계와 노사정위의 방침이 더욱 힘을 받게 됐다.
소비자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배전부문의 분할이 무산됨에 따라 전력 공급자인 한전의 발전자회사는 민영화되고 전력 구매자(배전부문)는 독점 체제를 유지하는 기형적 구조를 갖게 된다.
또 정부가 500억원 이상을 들여 이번 계획을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심각한 국고 낭비의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노사정위 공동연구단에 참여한 홍익대 김종석(金鍾奭·경제학)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발전회사를 민영화하는 데 한국은 노조의 압력으로 인해 정책이 무산됐다”며 “한전 안에 배전 관련 독립사업부를 둔다고 하지만 이는 조직을 더욱 비대하게 만드는 격”이라고 말했다.
▽공기업 민영화에 제동 걸리나=이번에 배전부문 분할이 무산됨에 따라 다른 공기업들의 민영화 계획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됐다.
이미 한국가스공사 노조는 자체 연구용역을 통해 가스공사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논리 개발에 착수했다.
이와 관련해 이희범(李熙範) 산자부 장관은 “배전 분할과 함께 추진하려던 가스산업 구조개편은 현재 노사가 협의 중인 만큼 결과를 보고 방향을 잡을 것”이라면서 “가스산업은 배전분할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 정부가 이미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의 통합에 대해 유보적인 견해를 보인 바 있는 데다 이번에 배전부문 분할 계획이 무산됨에 따라 가스공사의 민영화도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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