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선물 단타매매’ 증시 뒤흔든다

  • 입력 2004년 5월 26일 18시 54분


25일 서울 여의도 한양증권 11층의 선물옵션 트레이딩 센터. 30∼60대의 데이트레이더 8명이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책상 하나에 펼쳐져 있는 모니터의 수는 최소 4대 이상. 각종 선물 시세판 숫자와 그래프가 끊임없이 변해갔다.

“아직 장이 안 끝나서 자리를 뜰 수가 없어요.” 한 데이트레이더는 기자가 말을 걸자 이렇게 대답하고는 곧 모니터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한쪽 구석에는 점심으로 때운 컵라면 용기와 김밥 봉지가 버려져 있었다.

각 증권사의 주요 지점에 갖춰진 트레이딩 센터는 개미들이 선물, 옵션 매매를 위해 몰려드는 곳.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갖춘 가정집이나 PC방 등에서 하루 종일 파생상품 거래에 매달리는 개인도 상당수다.

25일 증시를 휘청거리게 만든 것은 이런 개미들의 대규모 선물 매도 공세였다.

▽선물 투자에 매달리는 개미들=최근 증시가 선물시장의 움직임에 휘둘리고 있다. 선물시장의 영향을 받은 프로그램 매물이 현물시장에 쏟아지면서 번번이 반등세를 짓누르는 상황이다. 외국인의 선물 누적순매도 규모가 전례 없이 급증하는 등 선물시장 자체의 변동성도 커졌다.

이런 선물시장의 최대 플레이어는 개미투자자. 작년 말 개인들의 선물시장 매매 비중은 55.1%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올해는 45%(4월 말 기준)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외국인 비중(22%)을 크게 웃돈다. 이처럼 높은 개인 비중은 외국 선물시장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개인들은 이날 선물 4609계약을 순매도해 증시 약세를 주도했다. 장중 한때 7000계약을 넘어서기도 한 이들의 공격적인 매도세 탓에 2380억원대 프로그램 순매도가 이뤄진 것.

유가가 하루 만에 급등세로 돌아선 점, 반등의 힘이 약해졌다는 인식이 확산된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 기존 매수포지션 청산 외에 신규 매도 물량이 가세한 이날 ‘팔자’세는 다분히 투기적이었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대박 환상’ 깨지고 ‘쪽박’ 찬다?=증시 약세가 이어질 경우 파생상품 시장의 개인 참여도는 높게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주가 하락시에도 수익을 노릴 수 있는 데다 주식 투자에 비해 ‘레버리지(leverage)’ 효과가 크기 때문.

그러나 상당수 개미는 최근 증시 급락 및 이후의 불안한 장세에서 큰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옵션에 투자한 개인들은 ‘블랙 먼데이’로 불린 5월 10일의 폭락장 이후 이틀 동안 최대 1000억원을 잃었다는 계산도 나왔다. 이 차익은 개인과 정반대 포지션을 취했던 외국인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는 분석이다.

40대 남성 A씨는 최근 급락장에서 30억원을 날린 경우. 과거 전설적인 선물투자 수익률로 유명세를 탄 C씨도 이 시기에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증시 전문가들은 “데이트레이딩에 전념하는 소수 ‘고수(高手)’들을 제외하면 대다수 개인은 파생상품 투자에 실패한다”고 지적한다. 초 단위로 이뤄지는 투기적 단타 매매를 일반인이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

옵션 투자의 대가로 알려진 박모씨(필명 일산가물치)마저 “오늘은 손실을 좀 봤다”고 털어놨다. 그는 파생상품 매매 속도나 변동 폭이 커지고 있어 장을 따라가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박씨는 “외국인이 한국 선물시장을 투기 판으로 보고 달려드는 상황이어서 아무리 상황 분석을 해도 과거만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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