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핵심브레인, 관료출신“성장”vs 교수출신“개혁”

  • 입력 2004년 5월 20일 18시 28분


《총선 이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놓고 청와대, 정부, 여당에서 정책 결정에 관여하는 주요 책임자 사이에 서로 엇갈리는 발언이 잇달아 나오면서 ‘정책의 불확실성’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 정부 경제정책 결정에 깊이 관여하는 핵심 브레인들은 누구이며 이들이 한국 경제를 보는 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또 성장, 개혁, 대기업 정책, 분배격차 개선, 경제정책의 우선순위 등 최근 쟁점으로 떠오른 주요 현안에 대한 정부의 정책기조는 어떤 식으로 정리될까. 경제 분야 ‘파워 엘리트’의 경제관과 정책방향을 집중 분석한다.》

18일 청와대 본관. 국무회의장에 들어가는 이헌재(李憲宰) 경제부총리에게 최근 불거진 경제팀간의 ‘노선갈등’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 부총리는 “경제팀에 성장 및 개혁과 관련해 이견은 전혀 없다”고 답변했다. 과연 그럴까.

▽경제관료 출신과 교수 출신의 ‘대결’=올 2월 이 부총리가 취임한 직후만 해도 현 정부의 정책기조는 경제팀 수장(首長)인 이 부총리가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기업가정신 고양 등을 주장하면서 기업친화적 정책을 쏟아냈다. 산업자원부도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기업 투자나 활동을 위축시키는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며 재경부의 입장을 거들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 첫해인 지난해의 ‘경제정책 실패’도 이 부총리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4·15총선을 계기로 진보 성향의 교수 출신 경제브레인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이들의 든든한 배경은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확보라는 총선 결과였다. 반격의 출발점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이었다.

교수 출신인 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은 재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집단(그룹)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축소 등을 뼈대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여당의 지원을 업고 밀어붙였다.

강 위원장은 “소유지배구조가 왜곡되고 기업 투명성이 결여된 경우에는 공정경쟁은 사라지고 정글의 법칙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른바 ‘재벌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한 발언이었다.

반면 재경부는 유예기간을 3년 정도 두고 축소 폭을 좀 더 완만하게 가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교수 출신인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도 공정위를 측면 지원했다. 이들 ‘개혁파’ 인사들은 ‘지금 개혁을 늦추면 앞으로 경제가 좋아져도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2차 대결’은 대우종합기계 매각을 놓고 벌어졌다. 이정우 위원장이 일단 밀어붙여 노조와 직원들로 구성된 대우종합기계 지분매각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나 이 부총리는 “차별도, 특혜도 없다”며 노조에 대한 ‘특별 배려’ 움직임에 쐐기를 박았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경제정책 라인=청와대에서 경제정책 결정은 박봉흠(朴奉欽) 정책실장-조윤제(趙潤濟) 경제보좌관-이정우 위원장 등 삼두체제로 움직이고 있다. 기획예산처 장관 출신인 박 실장은 자신의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지 않는 대신 경제 현안을 둘러싼 부처간, 참모간 이견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학자 출신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조 보좌관은 큰 그림을 그리면서 글로벌스탠더드에 맞는 시장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

경제부총리 출신인 열린우리당 홍재형(洪在馨) 정책위의장은 공정위의 공정거래법개정안에 대해 “당정 협의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만큼 재검토해야 한다”며 제동을 거는 등 비교적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열린우리당은 전열이 정비가 안돼 있어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 ‘목소리’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열린우리당은 선거가 끝난 뒤 민생경제를 살리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의 필요성을 강하게 요구했으나 최근 청와대가 “아직 추경을 논의하기에는 이르다”며 재경부편을 들면서 머쓱해진 상황. 그러나 국회가 개원하고 당이 정비되면 나름대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는 무승부=이른바 ‘성장우선파’와 ‘개혁파’의 노선대결은 아직까지는 무승부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공정위와 재경부가 대리전을 치렀던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방침은 의결권 제한폭은 공정위안, 유예 기간은 재경부안을 택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

또 대우종합기계 매각의 경우 공대위가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나 매각방식은 원안을 유지해 이 부총리의 의지가 관철됐다.

그러나 아직도 ‘현 상황에선 기업투자를 살리는 데 정책방향을 둬야 한다’(성장우선파)와 ‘지금 개혁을 하지 못하면 영원히 못한다’(개혁파)는 양측의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보다 분명하게 경제정책 기조의 가닥을 잡아주지 않으면 이들의 갈등은 계속 나타나고, 따라서 정책의 불확실성도 계속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