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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5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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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 김상협 선생 전기 편찬위원회’(회장 홍일식)가 엮은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의 한가운데를 걸어온 남재의 삶을 정리했다. 특히 군사독재정권 하의 대학 총장으로서 상아탑을 수호해야 했던 고뇌,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외면할 수 없었던 지식인으로서의 갈등 등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1942년 일본 도쿄제국대를 졸업한 남재는 1946년 고려대 정치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1962년 군사정부에 의해 문교부 장관으로 임명돼 9개월간 학교를 떠난 것 외에는 줄곧 연구에 전념하며 ‘기독교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교도민주주의’(1963), ‘모택동 사상’(1964) 등의 역저를 내놓았다. 1970년 고려대 제6대 총장에 취임한 그는 학내외의 존경을 받으며 총장직을 수행했지만 교내에서는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됐다. 급기야 1975년 4월 8일 대통령 긴급조치 7호로 고려대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한 대학교를 대상으로 대통령 긴급조치가 내려졌으니 남재로서도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당시 “그냥 바보처럼 총장직에 더 눌러앉아 있을까 그만둘까, 망설이며 꼬박 이틀 동안 고민하다가”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학교를 보호하기 위해 총장 임기만료 6개월을 남겨 두고 사임을 결정한다.
1977년 고려대 제8대 총장으로 복귀해 “재수생 총장”으로서 임기를 마쳐 가던 그는 다시 전두환 대통령에게서 국무총리를 맡아 달라는 청을 받는다. 이철희-장영자 사건으로 민심이 흉흉하던 때였다. 건강을 이유로 고사했지만 대통령의 요청은 집요했다. 군사정권에 참여하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것만이 능사인가를 고민했던 남재의 내면은 총리 임명 직후 집으로 몰려 온 취재진에 던진 소감 첫마디에 드러난다.
“이 나라는 남의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입니다. 이 사회는 남의 사회가 아닌 우리 사회입니다…”
“막힌 곳은 뚫겠다”는 남재의 총리 취임 일성은 민심을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러나 총리 자리는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취임 1년4개월 만인 1983년 10월 총리에서 물러난 뒤 1985년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취임해 남북관계 개선에 힘쓰던 그는 독서와 여행으로 말년을 보내다가 1995년 2월 21일 영면했다.
출판기념회는 10일 오후 6시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다. 02-780-7252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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