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송파 실버퀵’ 임진택씨

  • 입력 2004년 4월 27일 18시 24분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고 싶다는 임진택씨는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이라는 생각만 버리면 누구에게나 적합한 일자리가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김미옥기자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고 싶다는 임진택씨는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이라는 생각만 버리면 누구에게나 적합한 일자리가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김미옥기자
임진택(林珍澤·68·서울 송파구 송파동)씨는 최근 ‘새 출발’을 했다. 매일 아침 서울 송파노인종합복지관에 출근해 60, 70대 동료들과 회의를 갖고 오후에는 가방을 둘러메고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비롯해 동사무소, 꽃집, 치과의원, 심지어 군부대 초소까지 찾아다닌다. 노인들이 직접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물건을 배달해주는 ‘송파 실버퀵(02-421-7858)’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다.

“몇 년간 아무 직업 없이 지내다 보니 쉬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었습니다. 전화만 들어오면 바로 배달 나갈 수 있는데 아직 덜 알려져서 그런지….”

‘송파 실버퀵’은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노인들의 직장’을 마련하자는 송파구청의 주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설립된 택배회사. 최근 배달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는 출가한 딸에게서 이 ‘정보’를 전해 듣고 주저 없이 ‘직원’으로 뛰어들었다. 3년 전 건설업체 전무이사를 끝으로 현직에서 물러나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다.

“왜 엉뚱한 일을 하려고 하느냐” “택배가 쉬운 줄 아느냐”며 말리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는 ‘용돈도 벌고 건강에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으로 밀어붙였다.

“배달하려면 많이 걸어야 합니다. 걷는 것만큼은 자신 있습니다. 중학생 때는 하루 16km 정도를 걸어 다녔고 요즘도 1만보 이상 걸어 다니니까요. 송파에 23년간 살아서 길은 손바닥 보듯 훤합니다.”

그는 택배 외에 다른 일거리를 갖고 있는 ‘투잡족’이기도 하다. 실버퀵 사무실로 출근하기에 앞서 오전 6시부터 2시간 동안 할당된 골목길을 돌며 버려진 쓰레기를 쓰레기봉투에 주워 담는 일을 한다. 골목길 청소로 하루 평균 7000원을 벌고 택배서비스는 배달요금의 80%를 본인이 가져가는 방식이어서 ‘품위 유지’를 위해 자녀들에게 손 벌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려운 건 피하려 합니다. 찾아보면 뭐든지 할 일이 있는데도 말이죠. 나는 몸이 허락하는 한 일할 생각입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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