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 매도 의견’ 신경쓰이네…他증권사 실행고심

  • 입력 2004년 2월 9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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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몹시 신경 쓰인다. 우리도 앞으로 변해야 할지 여부를 고민 중이다.”(A증권사 리서치센터장)

삼성증권이 최근 개별 종목에 대해 잇따라 ‘매도’ 의견을 내자 다른 증권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라며 앞으로 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분위기를 살피는 모습이다.

▽“더 이상 어정쩡한 투자의견 안 낸다”=삼성증권은 9일 에쓰오일에 대해 “주가가 부담스러운 수준에 도달했으니 차익 실현에 나서라”며 매도 의견을 제시했다.

에쓰오일은 이 증권사가 현대엘리베이터, LG카드에 이어 세 번째로 “팔라”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종목. 지난달 말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이 “앞으로는 매수뿐 아니라 매도 의견도 과감히 내겠다”고 공언한 뒤 나온 결과다.

이 보고서와 함께 이 회사 주가가 지나치게 높게 평가됐다는 우려가 높아지면서 에쓰오일은 오전 한때 8% 가까이 급락했다가 오후에 반등했다.

삼성증권의 움직임에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내심 당황하는 눈치다.

각 증권사들은 예상수익률에 따라 투자의견을 ‘매수’ ‘중립’ ‘매도’ 등으로 나누게 돼 있지만 작년 매도 의견은 전체의 0.1%에 불과했다.

B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이나 해당 회사의 반발이 너무 심해 매도 의견을 제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막상 다른 증권사가 이를 실행에 옮기니 좀 곤혹스럽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투자 의견을 ‘중립’으로 낮추는 것으로 일정 부분 매도 의견을 대신했던 게 사실”이라며 “솔직하게 투자 의견을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고 말했다.

일부 리서치센터장들은 장기적인 영업 전략과 리서치의 방향 차원에서 이번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

즉 삼성증권이 일임형 랩 어카운트 등 자산관리영업에 초점을 맞춰 기관이 아닌 개인투자자들을 위한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다른 증권사가 종합주가지수 대비 초과수익률을 기준으로 따지는 것과는 달리 삼성증권이 현재 주가에서 더 오를지, 떨어질지를 따지는 절대수익률을 근거로 의견을 제시한 점을 지적한 것.

▽‘매도 의견 문화’ 정착될 수 있을까=그러나 증시 전문가들은 매수 의견 일색인 증권업계의 보고서 작성 관행을 바꾸는 데는 한동안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팔라”는 의견을 낸 삼성증권의 한 애널리스트는 이후 한동안 투자자들의 항의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다른 애널리스트는 이를 미리 감안해 보고서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실험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C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절대수익률을 근거로 ‘매도’ 의견을 낸다면 하락장에서는 모두 팔라는 이야기냐”며 “중립으로 하향된 투자 의견을 매수나 보유로 받아들이는 투자자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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