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김용국씨 “디자이너명성=옷값 과감히 포기했죠"

  • 입력 2004년 1월 28일 19시 08분


디자이너에게 옷값은 자존심으로 통한다.

디자이너의 실력과 명성에 따라 옷값이 달라지기 때문. 그러나 이 자존심을 버리고도 행복한 디자이너가 있다. 지난해 초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가격 파괴 의류 매장 ‘키미쿡’을 낸 디자이너 김용국씨(47·사진)다.

키미쿡 매장에 들어서면 여러 번 놀란다. 여성 정장 1벌에 22만원. 모직코트 26만원 등으로 모든 여성 정장이 20만원을 많이 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재고 떨이 매장 수준은 아니다. 1000만원에 이르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 고가구 등으로 꾸며진 고급스러운 매장 인테리어와 디자이너 숍 수준의 고객 서비스가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

“누구나 알아주는 ‘훌륭한 디자이너’보다는 싸고 질 좋은 옷을 만드는 ‘좋은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때 미스코리아 드레스와 평상복 공식 디자이너로 활동한 그가 명성에 금이 가는 ‘가격 파괴’ 매장에 도전한 이유다. 경기 불황으로 재고가 쌓이면서 고객이 있어야 평생 디자이너로 남겠다는 꿈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해 초 매장 15개, 직원 200명에 이르던 사업을 매장 1곳으로 줄이고 옷값을 3분의 1로 내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처음 한두 달은 적자였다. 그러나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싸고 질 좋은 옷”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단골 고객이 3000명으로 늘었다. 고객 1명이 구입하는 옷은 평균 1.7벌. ‘박리다매(薄利多賣)’ 전략이 먹혀든 것. 재고율도 10%대로 떨어졌다.

할머니, 어머니에 이어 3대(代)째 디자이너로 가업을 잇고 있는 김씨는 “이익은 줄었지만 평생 디자이너로 활동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박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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