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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25일 16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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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전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이매진하이의 윤정의 사장과 그가 제작 중인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비나’. 권주훈기자 kjh@donga.com
# 세상에서 가장 작은 스크린
이 애니메이션은 그러나 극장이나 TV에서 보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나가 상영될 스크린은 가로 3cm 세로 4cm의 LCD 창. 영사기 대신 무선인터넷이 애니메이션을 쏴 주고, 관객은 손에 든 휴대전화와 귀에 꽂은 이어폰으로 작품을 감상한다.
그러나 그 작은 스크린으로 영화 못지 않은 감동을 주기 위해 다양한 기법이 동원된다.
# 가! 막가!
어느 날 비나는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고 있다. 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면허를 땄는지 배경 설명은 없다. 그냥 면허를 딴 것이다.
멀티미디어를 감상하면 휴대전화 배터리는 1시간반이면 다 닳는다. 또 휴대전화로 영화를 보는 사람이 버스 안에 있는지 잠시 ‘볼 일’을 보는 중인지 알 길이 없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성인물은 대부분 ‘심야에 혼자 보는 게 보통’이라는 통계만 나왔을 뿐. 잠시라도 틈을 주면 관객은 초소형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언제 폴더를 접을지 모른다. 과감한 생략 없이는 관객도 없다.
면허를 딴 비나는 돈을 벌기 위해 그날 밤 불법 자가용 영업(속칭 ‘나라시’)에 나선다. 첫 손님으로 술 취한 남자를 태우고, 차가 출발하기 무섭게 남자는 비나에게 치근덕댄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비나는 속력을 내고.
비몽사몽간에 남자가 “가, 막가!”를 외치며 속도를 즐기는 사이, 비나는 그만 브레이크 위치를 잊어버리고, 이어 빠르게 화면을 뒤덮는 수십 차례의 추돌 사고. 그리고 3만원 벌려다가 300만원 수리비를 떠안게 된 망가진 비나의 모습.

# 아슬 아슬
‘천방지축…’을 제작중인 이매진하이의 윤정의 사장은 “승부는 5분 안에 난다”고 말한다. 휴대전화 관객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호흡은 빠르게, 결론은 즉시 보여 줘야 하고, 내용상 군더더기는 싹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자극적이어야 한다는 것.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인 비나의 움직임은 실제 사람의 동작을 센서로 읽어 들여 구현하는 모션캡처 기법으로 만들었다. 디스코텍에서 돈 많은 ‘느끼남’과 블루스를 추고, ‘멋진남’과 입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비나의 동작은 모두 20대 초반의 무용과 여대생들이 주요 관절에 센서를 붙이고 연기했다.
휴대전화는 가입자 신상정보와 비밀번호로 성인물은 성인만 보게 할 수 있다. 외설스러운 표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남성을 유혹하는 비나의 끈적끈적한 음성은 70년대 방화 저리 가라 수준이고, 남성들이 시선을 두고 싶어 하는 비나의 신체 부위는 충분히 자주 액정화면을 가득 메운다. 극중 인물들은 조폭이 쓰는 욕설도 거침없이 내뱉으며 쉬지 않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말라’고 애원한다.
# 8000장
더할 나위 없는 속물 비나는 그러나 아픔이 있는 아이다. 어머니는 없고(왜 없는지 설명은 없다. 지루하니까) 아버지는 외환위기 때 직장을 잃었다. 카드 빚도 많다. 비나는 학비와 생활비를 동시에 벌어야 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이웃의 한 명이고 때로는 우리 자신이다.
언제 어디서나 관객의 눈과 귀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런 모바일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알까? 5분짜리 에피소드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6개월 동안 그림 8000장을 그려야 한다는 사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볼만한 5분짜리 무선인터넷 멀티미디어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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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011 017)
▽건달과 달걀(영화)=돈 없고 학벌 없는 삼류건달과 벙어리 소녀의 사랑이야기. 양방향 형식으로 제공되며 사용자의 선택에 따라 3가지 다른 결말이 준비돼 있다.
▽메디컬 아일랜드(애니메이션)=과학문명이 발달한 한 외계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수준 높은 과학기술을 갖춘 이 별의 종족들은 점차 자만심에 빠지고 이성을 잃어 가는데….
▽모바일 졸라맨(애니메이션)=기존 플래시 졸라맨의 업그레이드 버전. 졸라맨은 이번에도 엽기적인 방법으로 테러리스트를 소탕하러 나서고….
▽마이굿 파트너=강력계의 실력파 형사 강철과 얼굴은 예쁘지만 멍청한 골칫거리 백지미 형사가 좌충우돌 하며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의 코믹 패러디 수사극.
●KTF(016 018)Fimm
▽이정수의 주먹다짐(코미디)=KBS2 개그콘서트 ‘이정수의 우격다짐’의 모바일용 동영상. “내 개그는 갤러리 정의 의자야!” “왜요?” “돼지도 앉지(되지도 않지)” 등, TV에서는 보지 못한 우격다짐을 선보인다. 성인 대상 우격다짐도 볼거리.
▽대경성 리메이크(뮤직비디오)=서태지의 대경성 뮤직비디오를 무선인터넷용으로 리메이크한 작품. ‘경성’은 지금 서울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 탁상공론 무책임 권위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대도시는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담았다.
▽패싸움(영화)=한국의 타란티노로 불리는 유승완 감독의 작품. 우연히 일어난 당구장 패싸움 때문에 인생이 엇갈리는 공고 졸업생 석환과 성빈의 이야기를 담았다. 6분짜리 두 편으로 구성돼 있으며 흑백으로 전개, 암울한 기록 필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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