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정위 계좌추적권 연장 무리다

  • 입력 2003년 8월 20일 18시 24분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좌추적권 보유를 5년 연장하겠다는 것은 지나치다. 당초 2년 시한으로 도입된 계좌추적권을 3년 늘린 데 이어 다시 5년간 추가 연장한다면 사실상 상설화나 다름없다.

1998년 계좌추적권 도입이 논의됐을 때 기업계와 금융계는 물론 일부 정부부처와 여권도 반대했다. 금융실명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수사기관이 아닌 공정위가 계좌추적권을 갖게 되면 형사행정체계를 혼란시킨다고 지적했다. 반대여론이 거세지자 정부 여당은 ‘2년 한시’라는 조건을 달아 관련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따라서 시한을 두 번씩이나 연장할 경우 정부의 신뢰성에 금이 간다.

공정위는 계좌추적권 없이는 대기업의 금융계열사 등을 통한 부당내부거래를 ‘효과적으로’ 조사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주된 이유라면 행정편의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공정위 편하라고 법이 존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보다 중요한 정책목표나 법익(法益)이 행정기관의 편의보다 우선돼야 마땅하다. 계좌추적권이 없다 해도 공정위는 현장조사권과 자료영치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계좌추적권이 자의적으로 행사될 여지가 크다는 점도 문제다. 공정거래법은 공정위의 계좌추적권 발동요건을 ‘상당한 (부당내부거래) 혐의가 있고’ ‘(계좌추적을 않고는) 확인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 모호한 표현으로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대북(對北) 지원과 관련, 현대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 혐의가 제기됐을 때 “상당한 혐의가 없다”며 계좌추적을 거부해 법규를 정치적 고려에 따라 자의적으로 적용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와 집단소송제 등이 시행되면 부당내부거래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정위의 계좌추적권은 일몰시한인 내년 2월 이후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은 오히려 공정거래법의 과잉규제조항을 줄이는 논의를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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