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명광고]할리 데이비슨

  • 입력 2003년 5월 26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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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게는 영웅이 필요하다'는 카피로 유명한 할리 데이비슨 광고. 사진제공 제일기획
'어린이들에게는 영웅이 필요하다'는 카피로 유명한 할리 데이비슨 광고. 사진제공 제일기획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한 조카가 첫날 도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에게 심각하게 물었다.

“엄마, 아빠랑 사범님이랑 싸우면 누가 이겨?”

아들에게 절대적인 영웅이었던 아빠의 신화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조카처럼 그렇게 ‘절대 영웅’ 아빠의 자리를 숱한 인스턴트 영웅들이 대신 차지했다가 사라지곤 하면서 어린이들은 나이를 먹어간다. 어느 순간 무미건조한 단어로만 영웅이 자리를 잡으며 그들의 어린 시절은 끝이 난다.

사라진 것은 영웅만이 아니다. 그들의 순수한 가슴 벅차게 피어올랐던 꿈도 함께 아련하게 멀어지다 없어진다. 그들에게 삶은 단지 고달픈 하루하루 현재 일상의 반복이 되고 미래는 단순한 현재의 시간적 연장으로 새겨진다. 그렇게 고달프게 일상을 달려오다 문득 거울 속의 삶에 지친 중년의 자신을 낯선 사람으로 쳐다보게 될 때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만큼이나 큰 목소리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치게 된다.

오토바이 할리 데이비슨 광고는 바로 그 시절로 당신을 이끌고 들어간다. 친구들과 놀다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굉음과 함께 불쑥 솟아나듯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나타난 검은 가죽 재킷의 사나이를 본 어린 시절로 당신을 인도한다.

전형적인 미국 중서부 어느 마을의 타운 홀 앞에 당당하게 서있는 할리 데이비슨 한 대. 그 옆에 미동도 없이 서있는 그네는 이렇게 외치는 것 같다. ‘마법에 걸려 사라진, 여기서 재잘거리며 놀던 꼬마들을 찾아주세요’라고.

“할리 데이비슨에 오르라. 어린이들에게는 영웅이 필요하다”는 카피는 이 자체로 할리 데이비슨을 탈 충분한 이유를 제공한다. 더욱 귀를 기울이면 ‘꿈을 잃고 일상이라는 마법에 걸린 당신, 할리 데이비슨에 올라 마법을 풀라’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가슴이 마구 뛴다.

2001년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서 ‘할리 데이비슨 카페’에 들렀다. 맥주 배가 불룩 나온 한 중년의 사내가 벽에 걸린 이 광고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카피를 되풀이해서 읽고 그림을 가슴에 새긴 후 긴 한숨과 함께 약간 상기된 얼굴로 돌아서던 그 사내. 그는 자신에게 걸린 마법을 풀었을까? 영웅이 되었을까?

박재항 제일기획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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