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 추락]內外변수보다 정책에 문제

  • 입력 2003년 5월 22일 18시 49분


코멘트
22일 오전 서울지검 서부지청에 출두한 안희정씨가 청사로 들어가기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안철민기자
22일 오전 서울지검 서부지청에 출두한 안희정씨가 청사로 들어가기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안철민기자
외국계 증권사에 근무하는 A부장(40)은 “외국계 투자가들은 두산중공업, 화물연대 사태 등을 지켜보면서 한국정부가 균형감각을 잃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의 경기침체 원인이 호황과 불황을 되풀이하는 ‘경기순환’보다는 오히려 정부의 정책방향과 경제시스템 등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는 게 대다수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경기침체가 경기순환의 문제라면 정부의 적극적 경기부양책으로 해결되지만 구조적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에 따라 경제전문가들은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과 균형감을 회복해 경제주체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장동력이 사라지고 있다〓성장엔진이라 할 수 있는 설비투자가 부진한 상태이고 민간소비도 다시 회복되기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그나마 수출이 버텨주고 있지만 수출만으론 적정성장률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게 한국은행의 진단이다.

설비투자 증가율은 올 1·4분기(1∼3월) 중 전(前)분기(작년 10∼12월) 대비 0.3% 감소했다. 지난 몇 년간 설비투자가 크게 위축됐던 점을 고려하면 미래를 위한 투자가 주춤한 상태다.

조성종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설비투자는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 모두 저조했다”며 “건설투자가 호조를 보였지만 이는 공장건설, 토목공사가 아니고 주상복합이나 오피스텔 등 상업용 건물이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성장잠재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민간소비 위축은 더욱 뚜렷하다. 에어컨 냉장고 등 내구재와 의류 서적 등 준내구재에 대한 소비지출이 감소한 데다 오락 문화비를 비롯한 서비스 소비가 둔화되고 있다.

신용카드 사용억제와 함께 가계대출 규제강화가 이뤄진 탓이다. 개인들은 당분간 소비보다 빚 갚기에 주력해야 할 상황이다.

▽수출도 안전판은 아니다=1·4분기 중 수출의 성장기여율은 80.5%에 달했다. 빠른 내수위축으로 수출 외엔 성장요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품수출(물량기준)은 섬유가죽제품 등 경공업제품 수출이 감소했으나 반도체, 음향, 통신장비, 자동차 등 중화학공업제품 수출이 호조를 보여 19.9% 증가했다.

하지만 작년 3·4분기와 4·4분기 상품수출 증가율이 각각 20.3%, 24.2%에 이른 점을 감안하면 수출증가율도 고개가 꺾인 셈이다.

게다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영향으로 주요 수출시장인 중국과 동남아 시장이 침체되면서 수출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노사불안은 경제회복의 가장 큰 걸림돌=작년 말 미국 인텔사는 한국에 100억달러 규모의 투자를 검토한 바 있다. 한국의 기술력과 중국시장을 염두에 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인텔사는 몇 차례의 현장조사를 거치면서 이 같은 계획을 유보했다. 노사관계 불안정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외국기업뿐 아니라 한국 기업들도 경제 발전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노사관계 개선을 꼽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올해 초 회원사 최고경영자(CEO) 120명을 대상으로 ‘새 정부의 우선 규제개혁 과제’를 조사한 결과 노동·노사 부문이라는 답이 11.8%로 가장 높았다. 공정거래(11.7%) 지배구조(10.3%) 준조세(7.4%) 등은 오히려 다음이었다. CEO들은 정리해고제도, 근로자파견제도, 법정퇴직금제도 등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새 정부는 친노조 성향의 노동정책을 펴는 등 노사문제는 오히려 기업들이 바라는 방향과는 반대로 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경제연구소도 ‘최근의 노사 이슈와 대응방향’이란 보고서에서 “올 들어 노사관계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면서 “소수 집단의 행동이 국가 전체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원칙에 따른 해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2분기 3%성장도 어렵다"▼

한국 경제에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1·4분기(1∼3월) 경제성장률이 예상치를 크게 밑도는 3.7%로 나오자 경제 전문가와 기업 관계자들은 “그동안의 우려가 수치로 증명됐다”는 반응이다. 민간연구소 및 증권사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2·4분기(4∼6월) 성장률은 3%선을 위협받을 것이며 앞으로 더블딥(경기가 반짝 상승한 뒤 다시 침체하는 현상)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2·4분기는 5월 중 휴일이 많고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물류대란 등이 겹쳐 1·4분기보다 실적이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2·4분기는 3%도 어렵다=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丁文建) 전무는 “최근 미국의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세계 경제가 불안한 데다 카드채 등으로 내수도 한계에 달해 올해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의 주력 산업들도 대부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는 주종목인 256메가 DDR266(32M × 8) 가격이 작년 11월초 8.88달러(동남아 현물시장 기준)에서 올 들어 5월21일에는 3.03달러로 떨어졌다.

작년에 전자업체들의 실적에 효자 노릇을 했던 휴대전화도 올 들어 1·4분기에는 내수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나 줄어들었다.

자동차 내수판매는 올 들어 4월까지 50만5595대로 작년 동기대비 4.9% 감소하는 등 대부분의 산업이 침체를 보이고 있다.

▽경제정책, 투자 활성화에 도움 안 돼=경제정책의 혼선도 경제 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동산경기 활성화를 위해 임대사업자의 자격을 완화하는 등 각종 유인책을 시행해왔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 투기가 과열 조짐을 보이자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보유세를 강화하려 하는 등 정책의 일관성을 잃고 있다.

기업들의 투자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별로 나오지 않은 것도 경제악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대내외 걸림돌이 많은 상황에서 ‘재벌 개혁’이 논의됨에 따라 투자분위기가 얼어붙은 데다 노사관계마저 안정되지 않으니 신규투자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비상 경영에 돌입한 대기업들=기업들은 현재의 경제상황을 본격적인 경기하강국면으로 보고 비상대책을 서둘러 마련하고 있다.

한국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최근 고강도 비상경영을 선언했다. 윤종용(尹鍾龍) 부회장은 "선진시장 침체 지속과 사스로 인한 아시아 경제 위축, 국내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경영 여건이 불확실해짐에 따라 혁신 성과 배가 및 원가절감 캠페인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4월 이후 김동진 사장 주재로 매일 본부장급 이상 임원들이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판매 및 재고 상황과 향후 대비책 등을 점검하고 있다.

▽특소세 인하 등 대책 있어야=한화투신 홍춘욱 투자전략팀장은 “정부는 2월까지 수출 호조에 따른 착시 현상에 속아 경기 진작 시기를 놓쳤다”면서 “특소세를 인하하거나 근로소득세 면세점을 높이는 등 소비심리를 풀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전무는 “적자재정도 감수하는 등 정부가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면서 “추경예산도 1조∼2조원으로는 미흡하므로 GDP의 1%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