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약세…증시에 藥될까

  • 입력 2003년 5월 14일 18시 20분



중소규모 무역업체 사장인 이모씨(58)는 요즘 환율 추이를 지켜보노라면 난감한 생각이 절로 든다.

환 헤지(위험 분산)를 위해 달러화 선물을 대량 사들인 이후부터 달러가 계속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 3월 말 1260원에서 1200원까지 떨어진 현재대로라면 만기일에 상당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북한 핵문제와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등 때문에 원화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달러 자체가 이렇게까지 흔들릴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탓이다.

▽달러 약세 지속 가능성 높아=달러 가치가 떨어지면서 최근 달러-유로 환율은 1.15달러로 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엔-달러 환율도 116.58엔까지 내려앉았다.

미국은 달러 가치의 하락을 내심 용인하는 분위기다.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이 최근 “수출증가를 위해서라면 달러화 약세를 인정할 수도 있다”거나 “환율시장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달러화 약세 기조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느리고 재정수지 적자폭도 확대되고 있는 만큼 달러 약세는 대세라는 것. 금융통화위원회격인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디플레이션 우려 발언, 유럽 증시의 주가 상승 등도 영향을 미쳤다.

대우증권은 달러가 추가 조정을 받을 경우 달러-유로는 1.2달러까지 오르고 엔-달러는 110엔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일본은 엔화의 급등을 막기 위해 정책적으로 개입할 의사를 밝혔고 유럽중앙은행(ECB)의 다음달 금리 인하설도 나오고 있어 하락세가 멈출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 증시에 가져올 영향은 복합적=달러 하락에 따른 수출 증가에 힘입어 미국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지면 주식시장은 장기적으로 상승 탄력을 받는다. 국내 주식시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자금이 유럽 등 해외로 빠져나가 미국 증시가 오히려 약해질 가능성도 높다. 실제 2001년 이후 달러 값이 떨어질수록 미국 다우존스지수도 하락하는 음의 상관관계가 강하게 나타났다.

한국 기업의 수출 의존도가 높은 점을 고려할 때 예상되는 악영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대우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수출증가율 둔화는 중국의 수출 확대 여부에 의해 상당 부분 상쇄될 수 있다”며 “달러화의 조정은 미 경제의 구조적 문제해결이라는 점에서도 증시에 긍정적”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삼성증권 허진욱 연구원도 이날 ‘최근 달러화 약세의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유럽으로의 수출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유로화의 강세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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