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 北지원설 미스터리]계좌추적만이 의혹 풀 수 있다

  • 입력 2003년 1월 16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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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의 발언으로 ‘현대상선 4000억원 대북송금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의혹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엄낙용(嚴洛鎔) 전 산업은행 총재. 그는 작년 9월 금융감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출과정에서 한광옥(韓光玉)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당시 이근영(李瑾榮) 산은 총재에게 압력을 행사했다고 폭로해 세상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 김윤규(金潤圭) 현대아산 사장,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 등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4000억원 사용처 규명이 최우선 과제〓엄 전 총재는 국감에서 “2000년 8월 총재로 취임한 뒤 얼마 후 김충식 전 사장이 찾아와 ‘그 돈은 우리가 사용한 돈이 아니니 갚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남북경제협력이 가시화하면서 북한으로 많은 자금이 넘어갔는데 너무 무질서하게 이뤄지고 있어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는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4000억원이 북한으로 넘어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비밀리에 북한에 많은 자금이 송금됐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

한나라당은 이 돈이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북한에 송금됐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의심할 만한 상황증거만 있을 뿐 결정적인 증거는 없는 상태이다.

감사원은 작년 말 산업은행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하면서 현대상선에 관련자료 제출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현대상선은 이 돈이 기업어음(CP) 상환과 선박용선료 등 원래 신청한 용도대로 사용했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

▽청와대 압력설의 진상은〓산업은행의 현대상선 4000억원 대출은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대출신청서 접수 후 이틀 만에 승인한 점, 신청서류에 김충식 전 사장의 자필서명이 빠져 있는 점, 이사 전결 사항인 당좌대출 형식을 빌린 점, 동일기업여신한도의 모호한 예외규정을 적용한 점 등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산업은행의 보수적인 대출관행을 감안하면 현대상선 대출은 뭔가 비정상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의문점은 한광옥 비서실장이 이근영 총재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한꺼번에 풀렸다. 현정부 실세가 지시한 것이니 산업은행이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시켰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한광옥 실장은 이 사실을 부인하며 엄 전 총재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으나 나중에 소송을 취하하기도 했다.

▽국정원도 개입됐나〓엄 전 총재는 “당시 국가정보원 3차장(대북담당)과 이기호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만나 4000억원 건을 보고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는 현대상선 4000억원 대출에 청와대와 국정원 등 현정권의 실세가 개입됐고 최소한 북한이 관련돼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는 지적.

온갖 설만 난무하는 상황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계좌추적권을 발동, 4000억원의 흐름을 추적해야 한다. 그러나 감사원과 검찰은 이런저런 핑계로 계좌추적권 발동을 하지 않았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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