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따라 주식종목 선택하다 병폐…

  • 입력 2002년 12월 19일 18시 27분


“투자자 스스로 좋은 종목을 발굴하려는 주체적 자세가 없다면 비슷한 사고는 계속 생길 것이다.”

17일 일어난 외국인투자자의 LG투자증권 계좌 미수사건에 대한 증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우려다.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축으로 증시를 주무르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사면 주가가 오르는 한국 증시의 현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외국인에 대한 오해〓지난해 한 외국계 증권사가 동일방직 등 몇몇 중소형 우량주를 집중 매수한 적이 있다. 당시 증시에서는 “외국인이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므로 주가상승 계기가 생겼다”며 외국 증권사가 사들인 종목에 대한 매수추천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사실 이 종목을 매수한 펀드매니저는 한국 사람이었다. 그는 올해 한국 증권사로 옮긴 뒤에도 비슷한 포트폴리오로 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그 펀드매니저가 한국 증권사 창구를 통해 중소형 우량주를 샀을 때에는 아무도 “주가상승의 계기가 생겼다”고 떠들지 않았다.

▽주도권을 넘겨준 한국 증시〓삼성전자를 샀다 팔았다 하며 ‘장난’을 치는 외국인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지적.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최고 42만원에서 최저 27만원까지 오르락내리락 했지만 외국인 지분은 올해 단 한 순간도 50%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고작 8∼9%의 외국인 지분 변동에 주가가 25만원 가까이 오르내린 셈.

외국인이 조금만 삼성전자를 팔아도 한국 투자자들이 따라 팔고, 외국인이 조금만 사도 한국 투자자들이 따라 산다. 외국인으로서는 “이것 봐라, 내가 하자는 대로 다 되네”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몇몇 외국인들이 삼성전자를 이용해 장난을 치는 것이나 한국 작전세력이 외국계 창구를 통해 외국인으로 가장해 작전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대투자연구회 김민국 회장은 “한국 투자자, 특히 큰돈을 다루는 기관투자가가 외국인 눈치만 보는 바람에 한국증시가 외국인이 주도하는 ‘투전판’으로 바뀐 면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따라하기는 잘못된 투자〓아직도 많은 증권 전문가들이 ‘외국인 매수종목 주목’ ‘외국인 관심종목 추격매수’ 등의 투자전략을 권한다.

이런 투자전략이 효과가 있다면 굳이 만류할 필요가 없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지적. 이미 외국인이 충분히 사 둔 종목을 따라 사면 외국인의 배만 불려줄 가능성이 높다. 기껏 따라 산 뒤 정작 외국인이 주식을 먼저 팔기 시작하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한국 투자자의 몫이 된다.

가치P&C 박정구 사장은 “특정세력의 움직임에 따라 주식을 사고 팔아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며 “철저히 기업을 중심으로, 독창적인 시각으로 주식을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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