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의 명품이야기]'크리스티앙 라크르와'

  • 입력 2001년 12월 5일 18시 47분


크리스티앙 라크르와(Christian Lacroix) 오뜨 쿠뛰르로 불리는 고급 맞춤복 시장에서 크리스티앙 라크르와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다. 오뜨 쿠뛰르는 샤넬, 이브 생 로랑, 크리스챤 디오르, 위베르 드 지방시 등 패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의 경연장이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 이후 프레따 포르떼(고급 기성복)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오뜨 쿠뛰르 시장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라크르와가 80년대 초 ‘장 파투’의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등장하자 고급 사교계 인사들이 다시 오뜨 쿠뛰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51년 남 프랑스 아를르에서 태어난 그는 예술과 문학을 좋아하고 박물관 전시계획자가 될 꿈을 꾸던 평범한 젊은이였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것은 프랑스 광고계의 실력자였던 장 자크 피가르. 그의 도움으로 라크르와는 파리 패션시장에 발을 내딛게 된다.

그의 첫 일은 세계적인 패션업체인 에르메스사의 보조 디자이너였다. 이후 의상실을 전전하며 실무를 익히기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한다. 정식 패션디자인 공부를 받지 않았음에도 그가 만든 옷은 개성이 넘치고 귀족적이라는 언론과 소비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런 장점을 인정한 프랑스 패션계도 마침내 86년과 88년 두 차례에 걸쳐 그에게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임을 인정하는 ‘황금 골무상’을 주기도 했다.

87년 그는 루이비통 모에헤네시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업체 ‘라크와르 쿠뛰르사’를 설립했다. 이후 90년대 초반까지 라크르와의 의상은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는 성공을 거뒀고, 그는 한 때 일본 황실의 디자이너로 채용되기도 했다.

그의 성공은 실용성보다는 예술성과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패션의 기본에 충실한 것이 바탕이 됐다. 그러나 지나치게 예술성을 강조한 패션을 고집하면서 90년대 중반 이후 대중의 외면을 받고 경영 위기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패션을 고집한다. “대중이 나의 패션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 현 숙(보석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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