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현대위기 잘 극복 됐으면…"

  • 입력 2001년 3월 22일 01시 19분


고 정주영명예회장의 청운동 자택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분향하고 있다.
고 정주영명예회장의 청운동 자택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이 분향하고 있다.
21일 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별세 보도를 접한 시민들은 한국 사회를 이끌던 지도자 한 사람이 사라진 데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현대그룹과 우리 경제의 앞날에 어려움이 닥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현대 계동사옥과 양재동 현대기아차사옥은 물론 울산 아산 서산 등 전국의 현대사업장에는 충격 속에 비장감이 감돌았다.

○…정 전명예회장이 입원해 있던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중앙병원 18층 VIP특실에는 이날 오전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의료진이 아닌 병원관계자들의 출입이 더욱 엄격히 제한되었고 그룹 관계자들의 분주한 움직임만이 목격됐다. 오전 한때 ‘정 전명예회장이 정신을 잃으며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다’는 소문이 그룹쪽에서 흘러나오면서 ‘위독설’은 병원 안팎으로 퍼졌고 오후 8시경 정회장의 구체적인 사망설이 돌기 시작.

오후 5시를 넘어서며 병원측의 비상연락을 받은 정씨 일가들이 속속 병원에 도착하고 영안실에도 오후 7시경부터 빈소를 찾는 손님들을 맞기 위한 준비가 진행됐다. 지난해 7월경부터 확장공사에 들어간 기존 영안실 대신 쓰이던 지금의 임시 영안실에는 13곳의 의전실이 마련돼 있으며 이중 5곳은 10일 전부터 보일러 공사 등의 이유로 폐쇄됐다. 18층 특실 입구는 사망이 공식 확인된 오후 10시10분경까지도 문을 굳게 닫은 채 1, 2명의 그룹관계자들만 들여보냈다.

○…정 전명예회장의 별세 직후 서울중앙병원은 기자회견을 갖고 사망원인 등을 소상히 설명. 중앙병원 공식 대변인 피수영(皮洙英) 소아과장과 주치의 이영수(李英洙) 최재원(崔宰源) 박사는 정 전명예회장의 공식 사망원인을 ‘폐렴에 의한 급성호흡부전증’이라고 밝혔다. 피과장은 “오후 3시경 폐렴의 합병증인 급성 호흡부전증이 생긴 뒤 7시간 만인 오후 10시 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고 말했다. 병원측은 “정 전명예회장은 중환자실에 내려온 뒤로 호흡용 튜브를 끼고 있었기 때문에 임종 시에도 별다른 말씀을 하진 않으셨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이날 밤 늦게까지 장례절차를 놓고 논의를 거듭했다. 사회장과 재계장에 대한 논의도 많았으나 장자인 정몽구 회장이 5일 가족장을 고집.

○…임헌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도 과도 많았던 한 세대가 막을 내렸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일을 벌인 세대가 가고 이제 이들이 벌인 일을 2세대들이 정리해야 할 실질적인 시대가 도래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인의 생전에 남달리 가까이 지냈던 탤런트 강부자씨는 “대한민국의 큰 일꾼이 돌아가셨고 언제 그런 분이 또 태어나실까요. 재벌총수답지 않게 소탈하셨고 건강하셨고 자상하셨고 많은 분들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신 분이었다”고 말했다.

75년부터 4년 동안 비서를 지낸 김혜경 북토피아 대표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 주고 그들의 능력을 존중해주는 그분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하실 때는 전현직 비서 40여명을 매년 명절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불러 함께 식사를 하는 등 자상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으로 회고. 대구 달서구에서 사업을 하는 시민 이국로씨(63)는 “정씨는 100년에 한 번 나타날 정도로 뛰어난 경제인”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정 전명예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재계는 “경제계의 큰별이 떨어졌다”며 애도. 재계 관계자들은 특히 고인이 평생을 바쳐 일군 현대그룹이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눈을 감은 데 대해 못내 애석해 했다.

삼성의 한 임원은 “누가 뭐래도 한국경제 발전의 두 주역은 현대와 삼성이었고 고인은 늘 그 중심에 서 있었다”며 “소속 그룹을 떠나 후배들에게 사업가의 덕목과 전범을 행동으로 보여준 탁월한 기업인이었다”고 애도했다.

삼성 LG SK 등 주요 그룹들은 고인의 별세가 현대그룹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면서 “현대 경영진이 고인의 창업정신을 받들어 지금의 위기를 잘 극복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경련 손병두 부회장은 “맨주먹으로 출발해 세계적인 대기업을 키우기까지 고인이 바친 땀과 정열은 후세에 귀감이 될 것”이라며 “재계는 물론 국민 모두의 큰 슬픔”이라고 피력.

전경련 대한상의 등 경제5단체는 고인이 경제 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감안해 장례를 ‘경제인장(葬)’으로 치르자는 뜻을 모아 유족들과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울산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은 이날 정 전명예회장의 사망소식을 듣고 즉시 사무직 직원을 비상소집한 뒤 분향소를 마련하는 등 긴박하게 대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이날 오후 11시30분경부터 각각 1층 아반떼룸에 분향소를 마련했으며 22일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검은 리본을 달 수 있도록 6개 출입문에 리본을 비치.

현대중공업도 정 전 명예회장의 사망소식이 들린 직후 회사 내 체육관에 분향소를 마련했으며 직원들을 위해 회사 출입문에 검은 리본을 마련.

울산지역 현대계열사 노조도 이날 밤 정 전명예회장의 사망소식을 듣고 노조차원의 대처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이기도.

한 노조간부는 “정 전명예회장은 80년대 후반 노동운동이 싹틀 때 ‘1·8테러’ 등 노동운동 탄압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으나 우리나라의 현대화를 앞당긴 경제역군인 데다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주인공이어서 이중적인 평가가 뒤따른다”고 밝혔다.

<사회·이슈·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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