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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2월 8일 18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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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에버랜드 한식당(오리엔탈) 조리장 김병철(金秉哲·33·사진)씨의 음식에 대한 지론이다. 한식집에서 팝송이 흘러나오면 아무리 음식맛이 좋더라도 제대로 된 요리가 아니라는 뜻일터.
김병철씨는 요리경력 14년차인 베테랑 조리사. 젊은 나이에 이같은 경력을 쌓은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김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요리사가 되겠다며 대학진학을 포기했다. 경기도 이천의 장호공고를 다녔던 김씨는 당초 부모님이 바라는대로 전자공학도가 될 작정이었다. 그러나 서울에 계신 부모님과 떨어져 하던 자취생활은 엉뚱하게도 김씨에게 요리에 대한 호기심을 일깨워줬다.
공부는 그럭저럭 했지만 전자공학과를 나와 ‘공돌이’로 평생을 살고싶진 않았다. 신문이나 잡지를 봐도 유럽 등 서양에서는 조리사가 변호사나 의사에 버금가는 인기 직업인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멀쩡하게 학교 잘 다니던 장남이 어느날 요리사가 되겠다니. 그러나 그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대학교수인 고종사촌이 “나라가 발전할수록 식문화가 발달했다”며 지원사격 해준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결국 그는 열아홉살에 양식 레스토랑에 취직했다. 처음에는 설거지와 바닥청소 담당이었다. 그래도 어깨너머로 양식 조리법을 하나하나 익혀갔다.
군대에 가서도 대통령 경호실에서 취사병으로 근무했다. 노태우 대통령 집권말기였는데 한식을 좋아하던 노 전대통령의 식성에 맞추다보니 한식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군대생활은 청와대 취사병이라고 해서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불조절 잘못했다고 고참 취사병에게 ‘조인트’ 까이기도 여러번. 그래도 그시절 요리의 디스플레이 기법에 대해 배웠다.
90년 10월 제대하고서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체계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다음해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한국은행 본점의 조리부에 들어갔다.
93년 한강호텔에 들어갔을 때가 김씨의 조리사 인생에서 획기적 전환점이 됐다. 당시 이 호텔의 과장이던 봉하원씨가 요리의 이론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줬고 그에게 자극받아 서울보건전문대를 야간으로 마쳤다.
다양한 조리법을 익히기위해 용수산, 지화자 등 서울에서 유명하다는 음식점에서 조금씩 일했다. 그리고 세상 안목도 넓히고 동남아 요리도 배우기위해 베트남 현지에 있는 효산호텔에 들어갔다. 1년동안 총주방장으로 있으면서 베트남 등 동남아의 요리를 많이 배웠는데 그 때 배운 요리가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퓨전요리. 그러다 효산호텔의 본사인 서울리조트가 부도나면서 귀국했다. 95년 삼성 에버랜드로 들어온 김씨는 VIP 고객을 주로 책임지며 조리의 총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 마이클 잭슨 등이 기억에 남는 손님.
그는 국제 조리대회 입상 횟수만도 10여차례나 된다. 제 2회 국제요리 경영대회 한식단체 부문과 한국 방문의 해 국제요리 경연대회 일품요리 부문에서도 금메달을 받았다. 김씨는 신세대의 입맛을 끌기위해 전통음식에 새로운 기법을 가미하는 퓨전요리를 개발해 일본 등 외국에 한국요리전문점을 차려 한국 음식의 우수성을 퍼뜨리겠다는 포부를 다지고 있다.
“결혼이 늦었는데요, 제 부인은요 착하기만 하면 돼요. 요리는 제가 다 할 거니까요.” 수줍게 김씨가 내뱉은 말이다.
<하임숙기자>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