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게이트 수사]정치권-벤처 '유착'실체 드러나나?

  • 입력 2000년 11월 1일 19시 08분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으로 구속된 정현준(鄭炫埈)한국디지탈라인 사장이 사설펀드 등을 매개로 정치권과 연관을 맺었을 가능성에 대해 정치권 주변에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얘기가 적지 않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벤처기업과 정치권간 ‘검은 연계설’의 실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야권에선 오래 전부터 현 여권이 벤처기업을 정치자금 조달창구로 이용해온 의혹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즉 재벌을 통한 ‘뭉칫돈’ 조달이 힘들자 벤처기업으로 눈을 돌려 ‘합법적으로 투자해 과실을 남기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해 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나라당엔 지금도 “4·13총선을 앞두고 여권이 코스닥 주가를 띄운 의혹이 있다”는 미확인설이 나돌고 있다.

상장만 되면 100배 이상의 이익을 실현하기도 했다는 ‘코스닥 광풍’의 와중에서 상장요건 심의 등을 둘러싸고 정관계와 벤처의 유착관계가 형성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정현준씨의 배후의혹을 처음 제기한 것은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 정의원은 지난달 24일 “정씨가 대주주로 있는 P정보 통신에 실세 K의원의 돈 40억원이 투자돼 있다”, “K증권은 원외실세인 K씨가 뒤를 봐주고 있다”며 이른바 ‘K, K연루설’을 거론했다.

정현준씨의 그동안 행적도 ‘정치권 인사의 사설펀드 가입’ 등 배후의혹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씨는 지난해 정치권 주변인사들과 식사 모임을 자주 가졌으며 그런 자리에서 종종 “엄청나게 오를 테니 주식을 사라”고 ‘호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씨와 정치권 인사간에 실질적인 유착관계가 형성됐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철저히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코스닥에서는 정치권 인사라고 해서 마음대로 주가를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정현준펀드’ 가입자 중에도 손해를 본 사람이 많다는데 그런 위험한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조달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설혹 개인적으로 ‘정현준펀드’에 가입한 사람이 정치권 내에 있다 해도 그걸 정치적인 유착관계로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여권의 다른 관계자는 “정씨가 지난해 정치권 주변 인사들을 만나고 다닌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자기와 연배가 비슷한 젊은 층으로 이른바 핵심실세들과는 만날 계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윤승모기자>ysm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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