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현대車 "딴 살림 새 출발"

  • 입력 2000년 8월 31일 18시 47분


재계에 ‘현대자동차 소그룹’이라는 서열 5위의 재벌이 새로 생겨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1일 현대자동차 소그룹 10개사의 계열분리를 승인했다.

공정위 이남기(李南基)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간에 지분보유 관계 및 상호채무보증 해소 등 계열분리 요건을 충족함에 따라 현대그룹으로부터 현대차 소그룹의 계열분리를 승인한다”고 밝혔다.

계열분리가 승인된 현대차 소그룹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정공, 현대강관, 현대캐피탈, 현대우주항공, 오토에버닷컴, 이에치디닷컴, 인천제철, 삼표제작소 등이다.

당초 현대그룹측은 인천제철은 현대차 소그룹과 별도로 계열분리하려 했으나 공정위측은 정몽구(鄭夢九·MK)현대차회장이 인천제철의 사실상의 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판단, 자동차 소그룹에 포함했다.

정몽구 정몽헌(鄭夢憲) 두 형제가 갈라선 뒤 두 그룹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지, 또 형제간의 갈등은 과연 종결됐는지 주목된다.

정몽헌회장의 측근인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회장의 퇴진에 따른 현대그룹의 내부구도 변화도 관심을 모은다.

▽현대차 소그룹의 탄생〓자산 35조7000억원, 매출 16조1000억원의 새 재벌이 탄생했다. 삼성 현대 LG SK에 이어 5위. 반면 현대차 소그룹이 떨어져나간 현대그룹의 자산규모 순위는 올해 1위에서 앞으로 삼성에 이어 2위로 낮아진다.

현대차측에서는 경영권 다툼과정에서는 패배했지만 계열분리에 상당히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자동차소그룹이 축배를 들기에는 남아있는 과제가 만만치 않다.

우선 내부 권력투쟁의 조짐이 엿보인다. 지난 1년간 외부의 적을 막기 위해 MK의 ‘가신’들은 일치단결했지만 외부의 적이 사라진 지금은 ‘논공행상’을 앞두고 ‘어제의 동지들’간에 갈등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자동차를 둘러싼 외부 경영환경도 변수. 세계적으로 5매 메이저 자동차회사만이 살아남는다는 ‘글로벌 컴피티션(세계적 경쟁)’에서 현대 및 기아자동차가 이를 극복해낼지는 아직 미지수다. 르노와 포드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국내시장에 뛰어들 경우 국내 시장의 절반 이상을 3년 이내에 내줘야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현대와 기아자동차는 국내시장 수성에도 나서야하고 해외시장도 공격적으로 개척해 나가야하는 이중의 부담을 갖고 있다. 또 그룹에서 분리돼 모그룹으로부터 직간접적인 금융지원을 받을 수 없는 약점도 생겼다.

▽현대차 분리 및 이익치회장 퇴진후 현대호의 앞날은〓지난달 30일 이익치현대증권회장의 사직소식이 전해진 뒤 현대에서는 두가지 반응이 엇갈렸다. ‘정부에 철저히 무릎을 꿇었다’는 비분강개론과 ‘이제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현실론 두 가지.

지금은 현실론이 세력을 얻고 있다. 정몽헌 회장도 현실론쪽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상황이 좋지않다.

우선 현대건설 재생문제가 급선무. 현대건설은 자구안을 내놓고 이를 열심히 실천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아직도 ‘현대건설의 재생은 어렵다’는 국내외 투자가들의 비관적인 전망이 남아있다.

현대전자의 부채도 복병. 지금은 반도체 호황기이기 때문에 문제가 잠복돼있지만 예상보다 빨리 반도체 호황기가 끝날 경우 8조5000억원의 부채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로 바뀔 수 있다. 현대중공업 계열분리, 남북경협 수익성 확보도 남아있는 과제.

현대측은 이회장의 사퇴를 계기로 계열사별로 전문경영인 체제가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몽헌 회장도 대북사업 외에는 계열사의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두 형제 화해는 가능할까〓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정몽구 정몽헌 형제의 화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5월 현대투신사태때 두 형제가 직접 대면했지만 결과가 좋지않았다. 두 형제를 화해시킬 만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이끄는 기업이 법적으로는 완전분리됨에 따라 시장에 큰 악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정씨 집안’의 원로들은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명예회장이 생존해있을 때 부자간, 형제간의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병기·이명재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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