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부당내부거래 실태]금융기관 악용 '꼬리' 감추기 판쳐

  • 입력 2000년 8월 10일 19시 07분


재벌들의 부당내부거래를 잡아내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그물망’이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빠져나가려는 재벌들의 수법도 그만큼 지능화 고도화되어 가는 추세다.

10일 공정위가 발표한 7개 그룹의 부당내부거래 실태는 거듭되는 적발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이 여전히 ‘백화점식’ 수단을 동원, 계열사와 특수관계인 등을 부당지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수법 썼나〓우량 계열사에 의한 부실계열사의 기업어음(CP) 저리매입과 주식 저가양도 등은 5대 그룹에 대한 조사에서도 몇 차례 드러난 수법. 7개 그룹도 너나 없이 이 방법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재벌들은 금융기관을 중개 창구로 활용해 ‘꼬리’를 감추는 치밀함을 보였다.

금호산업 등 금호그룹 4개사는 98년 3월부터 99년 9월까지 적자 계열사인 금호개발에 9155억원의 CP를 발행해줬다. 금호개발은 이 CP를 금융기관에서 낮은 할인율로 할인받아 자금을 조달했다.

코오롱의 8개 계열사는 3년 연속 적자인 코오롱개발을 살리기 위해 필요도 없는 골프장과 콘도 회원권을 비싼 값에 매입해주는 ‘자선’을 베풀었다.

동국제강 계열사인 중앙종합금융은 장상태회장의 조카를 부당하게 도와줬다. 98년 1월부터 4월까지 이 조카가 최대주주인 동일제강의 CP 7825억원어치를 정상금리보다 5.0∼18.54%포인트 낮은 금리로 매입해 줬다.

롯데호텔은 97년 10월부터 조흥은행 등 3개 은행에 특정금전신탁 488억8800만원을 가입한 뒤 은행들이 이 돈으로 롯데쇼핑이 발행한 CP를 정상금리보다 낮은 할인율로 매입토록 했다.

쌍용양회와 쌍용화재해상보험은 97년 10월부터 올 4월까지 자본잠식에 빠진 오주개발과 쌍용자원개발에 선급금 명목의 무이자 자금대여, CP저리 매입 등을 통해 4763억원을 지원했다.

▽변칙상속에 이용되기도〓대림그룹은 2세에 대한 ‘변칙상속’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그룹의 계열사인 서울증권은 99년 10월 이준용 회장의 장남 해욱씨에게 대림정보통신 주식 49만8600주를 과거 가치로 평가해 팔았다.

공정위는 “상속 증여세법은 미래가치와 과거가치 중 하나를 임의로 선택해 평가할 수 있도록 했지만 정보통신회사 주식의 경우 미래가치로 평가해 매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라며 이를 부당지원행위로 규정했다.

대림정보통신은 올 3월에도 계열사인 삼호로부터 자사주 50만주를 과거가치로 평가받아 산 뒤 곧바로 소각, 해욱씨의 대림정보통신 지분을 100%에 육박하도록 만들었다. 공정위는 “두 가지 경우를 합한 주식거래 가격은 미래가치로 평가한 정상거래가격의 절반 정도에 불과해 사실상의 변칙상속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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