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 경영책임추궁]"投信부실화 정책잘못은 제쳐둔채…"

  • 입력 2000년 5월 12일 20시 24분


정부는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의 부실화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현직 경영진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형사처벌키로 했다.

또 양대 투신에 대한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규모를 각각 3조원, 1조9000억원으로 확정하고 6월초부터 9월까지 3, 4차례로 나눠 집행하는 한편 양사의 자산운용 부문을 분리해 증권사(판매사)로 전환시키기로 했다.

정부는 12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엄낙용 재경부차관과 이정재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금융정책협의회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이와 관련해 양 투신은 공적자금 투입에 앞서 이달 25일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6월중 증권사로 전환하며 △전직원 연봉제 도입 △사명변경 △상위직 계약고용제 △점포정리 등을 추진한다.

한편 두 투신사의 전현직 경영진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금융시장에서는 ‘손실분담’ 원칙을 거부한 투자자들에 대한 비난과 함께 대증적인 시장처방을 남발해온 정책 담당자들까지로 문책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강경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투신 경영진 책임추궁도 쉽지 않다〓남상덕(南相德)금감위 1심의관은 양대 투신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발표하면서 “전현직 경영진의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금감원 실무자들은 한발을 빼는 모습이다. 부실검사를 지휘해온 자산운용검사국 관계자는 “형사상 배임혐의가 성립하기 위해선 범의(犯意)를 입증해야 하지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부실의 상당부분은 ‘투자판단’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며 “실수를 형사상 단죄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민사소송을 걸더라도 수조원대의 부실을 경영진 몇 명에게 책임지라고 할 수도 없다.

▽자산실사 꺼린 경영진〓양 투신은 95년 한 차례 부실검사를 받았다. 따라서 이번 책임 추궁은 96년 이후 쌓인 부실에 대해서만 이뤄지며 부실의 근원으로 평가되는 89년 ‘12·12증시부양책’의 입안자와 당시 경영진에 대해서는 눈을 감을 것으로 보인다.

양 투신의 경영은 전직 관세청차장(김종환 대투사장) 선물거래소이사장(한투 이종남사장) 세무대학장(변형 전한투사장) 등 재경부(재경원) 외곽을 맴돌던 관료들이 맡았다. 이들의 관계 선배인 전직 경영진은 어느 누구도 과거 부실을 까발리지 않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신 자산실사는 98년에야 처음으로 이뤄졌다”며 “증시가 활황이었던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만 책망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정책담당자도 책임’ 논란〓금감위 관계자는 “투신 부실은 외환위기 이후 은행 돈줄이 막히자 기업들이 남발한 회사채 기업어음(CP)을 인수하면서 커졌으며 대우 침몰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사건이 터지면서 결정타를 맞았다”고 불가피성을 지적한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지난해말 3조원의 공공자금을 지원하면서 ‘투신 정상화’를 자신했다. 재경부와 금감위의 ‘시장예측’이 실패한 셈이다.

따라서 당시 정책담당자들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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