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맨의 비애]기관 문전박대…고객항의 빗발…

  • 입력 2000년 5월 11일 19시 29분


“합병이던 퇴출이던 일단 구조조정이나 끝나고 봅시다.”

한국투신에서 법인영업을 총괄하는 신대식(申大植)이사는 요즘 기관들을 방문하면 이런 소리만 듣고 오기 일쑤다.

내달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공사채펀드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큰 손들인 법인들은 좀처럼 돈을 맡기려 들지 않는다. ‘한투’라면 공신력있고 믿음직스런 대명사로 불렸지만 공적자금 투입과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면서 영업력에 급속히 금이 가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절감하고 있다.

▼설득할 기력조차 없어▼

“돈을 유치해야 할 투신사 직원 입장에서도 불신감이 팽배한 고객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이사는 고객들의 불평을 이해할 만 하다고 말한다.

투신사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이번 사태 말고도 이미 세 차례의 쓰라린 경험을 맛보았다.

인천 신세기투자신탁 파동 때 돈을 제 때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고 한남투신 자금인출 때도 영업정지 사태로 번지면서 투자자들이 여의도 금융감독원에 장사진을 치고 아우성을 쳤다.

지난해에는 대우채권에 물린 투자자들이 제때 돈을 찾지 못해 투신에 대한 불신감을 증폭시켰다.

실적배당상품인 투자신탁 상품에 대해 세 차례의 악몽이 투자자들의 뇌리에 남은데다 ‘이제는 못믿겠다’는 고객들의 얘기에 설득할 기력조차 잃은 것.

대한투신 수원지점 부지점장인 남명우(南明祐)차장은 하루종일 고객들의 전화를 받느라 진땀을 뺀다.

“공적자금이 투입되면 내 돈은 안전한지, 혹시라도 합병이 되면 손해를 보지 않을지 불안해하는 고객들의 전화가 대부분입니다.”

남부지점장은 “고객 돈인 신탁재산은 클린화 작업이 끝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영업직원에게 수시로 상황을 물어본다”고 전했다. 돈을 빼야할지 물어오는 전화를 받으면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투신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입장은 이미 주식형펀드에서 20∼30%씩 원금손실을 본 상황. 주가가 오르면 다른 상품으로 갈아타고 싶지만 주가가 게걸음을 하고 있어 속을 태운다.

투신사 영업점 직원들은 요즘 회사를 떠난 직원들을 부러워 할 때가 많다. 다른 투신사나 증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본 직원들은 ‘아예 그때 옮길걸…’하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지금은 스카우트 제의도 뚝 끊긴 상태.

이상호(李相鎬) 대한투신 주식운용부장은 감독원 검사 소리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난다. “지난해부터 금융당국이 검사한 건수만도 열손가락을 넘을 정도”라며 “검사에 지친 직원들이 고유업무를 못하고 매달릴 때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빨리 끝나야"▼

한국투신 영업부 관계자는 “합병을 하든 독자생존을 하든 빨리 결정됐으면 좋겠다”면서“합병하면 당장 잘릴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서지만 이렇게 지루한 싸움을 벌이느니 아예 합병이라도 서둘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펀드매니저는 “경영부실에 대해 문책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정부도 정책 판단에 대한 실패를 인정해야 투신사 직원과 고객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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