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먼데이/주가 추락]증시 사실상 "공황사태"

  • 입력 2000년 4월 17일 19시 40분


모두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난 주말 미국증시의 사상 최대 폭락으로 17일 어느 정도의 약세장은 예상했지만 100포인트를 넘나드는 폭락장에 투자자들은 망연자실 그 자체였다. 개장 초 주식 현물시장의 거래중단 사태(서킷 브레이커)는 국내 증시 사상 초유의 사건.

9시 증시 개장 전 동시호가에 투자자들이 팔려고 내던진 매물이 평소의 10배를 웃돌 정도로 투자심리는 이미 공황상태에 빠졌다.

전문가들조차 어디가 바닥인지, 언제쯤 반등이 시도될지에 대해 ‘말을 아끼는’ 형편이다. 국내 경제의 기초여건을 떠나 미국증시의 반등이 전제되지 않고는 희망을 얘기하기가 부담스럽다는 반응들이다.

▽‘블랙 먼데이’는 미국 증시동조화의 부산물〓미 증시의 폭락 여파는 이날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 증시의 동반하락을 초래했다. 10년째 호황을 누리면서 전세계 투자자금의 안정적인 투자처 역할을 하던 미국증시는 올 들어 거품론의 급격한 부상으로 사실상 ‘폭락의 시점’만을 저울질하던 상황. 그런 위기의 순간이 지난주 마침내 현실화된 것이다.

대유리젠트증권 김경신이사는 “수급불안으로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가운데 미국시장의 폭락충격이 투매를 유발, 이날 하락폭이 더욱 커졌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6조원 이상의 주식을 순매수하던 외국인들도 미국 증시의 폭락과 현지 글로벌펀드의 환매부담이 늘어나면서 12일 이후 순매도로 반전된 상태. 국내 주식시장에선 주식을 살 사람은 없고 팔 사람만 늘어나는, 최악의 수급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미래에셋 이병익운용본부장은 “외국인마저 주식을 사주지 않는다면 은행권의 손절매물량과 단위형신탁 및 뮤추얼펀드의 만기물량을 소화할 방법이 없다”고 우려했다.

▽국내 경제기초여건은 좋다는데…〓이날 증시에서 초유의 폭락장이 펼쳐지자 증권당국은 ‘국내 경제의 건실한 펀더멘털’을 재차 강조하면서 투매심리를 진정시키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러나 미증시의 추가적인 하락은 전세계 증시의 동반폭락을 초래, 회복단계에 있는 아시아권 증시의 조로현상(조기 침체)을 촉발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는 지적.

신영증권 장득수조사부장은 “올 들어 외국인들이 한국주식을 공격적으로 매수한 만큼 팔 때도 한국물이 첫번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KTB자산운용 장인환사장은 “금융 및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증시불안이 가속화될 경우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금리상승의 부담까지 떠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수하락 언제 멈출까〓국내 증시의 안정은 전적으로 미국증시의 반등에 달려 있다는 게 중론. LG투자증권 황창중투자전략팀장은 “오늘 밤 미국증시의 장세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상황”이라며 미국이 반등에 성공할 경우 국내 주가는 최소한 700선을 지키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기대했다. 대유리젠트 김이사는 “ 2·4분기엔 상당한 고통을 감내할 준비를 해둬야 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KTB자산운용 장인환사장은 “대폭락장이 펼쳐지면 추가투매의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며 “손절매의 기회를 놓친 이상 투매에 가담하기보다는 시장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강조했다. 신한증권 정의석리서치센터부장은 “국내 증시가 오름세로 돌아서더라도 이는 기술적 반등에 불과할 것”이라며 “새로운 호재에 기대기보다는 지수가 바닥권까지 떨어지고 충분한 손바뀜이 이뤄질 때까지 쉬는 게 상책”이라고 조언했다.

<이강운기자>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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