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후계구도 확정]MH 반격펀치에 MK 'KO敗'

  • 입력 2000년 3월 25일 00시 20분


24일 오후 4시20분. 정몽구회장이 경영권을 가진 현대자동차의 한 고위관계자 사무실. 그는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회장이 종로구 가회동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 집에서 나와 “오후 5시에 구조조정본부 발표가 있다”는 말을 했다는 보고를 받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승리를 확신하는 미소가 얼굴에 가득했다.

정몽헌회장과 이익치회장이 가회동 집에 들어갔다가 10여분만에 나온 사실을 전해 듣고 두 사람이 명예회장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나왔고 결국 이회장에 대한 인사를 승복하고 나온 것으로 판단한 것.

이 임원은 옆에 있던 기자들에게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하늘같은 아버지한테 아무 말도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잖아요. 곧 몽헌회장이 몽구회장을 찾아와 고개를 조아릴 겁니다”라고 말한 뒤 휴대전화로 급박하게 전개되는 상황을 어디론가 보고했다.

그로부터 한시간 뒤. “몽구회장이 그룹 경영자협의회 회장직을 내놓게 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져 왔다. 국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승리를 낙관했던 몽구회장측이 해외에 나가있던 몽헌회장에게 상상도 하지 못한 일격을 당한 것. 이번 일격은 반격을 허용하지 않는 KO펀치였다. 일거에 몰아치는 현대그룹의 문화처럼 몽헌회장측은 20일간 해외에서 체류하다가 귀국 4시간 만에 대역전 드라마를 엮어냈다.

열흘째 내홍을 겪던 몽구 몽헌 형제의 갈등이 급류를 타기 시작한 것은 몽헌회장이 24일 오후 2시경 일본에서 귀국한 뒤부터.

몽헌회장은 귀국 직후 공항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인사문제는 나는 모른다. 왜 나한테 물어보느냐”고 퉁명스럽게 답한 뒤 굳은 표정으로 공항을 황급히 빠져나갔다. “아버지가 이 사한 사실을 아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모른다”고 답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몽헌회장의 발언은 자신의 해외출장 중 아버지와 형이 이익치 회장을 경질한 데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으며 아직 두 형제간에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해석됐다.

23일 귀국, 24일 현대증권으로 ‘당당하게’ 출근한 이회장 역시 임원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들에게 “인사는 대주주가 결정, 구조조정본부에서 통보하도록 돼 있는데 나는 아직 인사통보를 받지 못했다”며 “그룹구조조정본부에 확인해보라”고 말했다. 이 발언 역시 아직 인사 문제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고 이회장이 항명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오후 3시. 몽헌회장은 서울 종로구 계동 본사사옥에 돌아온 뒤 경호원들을 동원, 기자들의 접근을 막고 김윤규(金潤圭)현대건설사장을 불러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받았다. 같은 시각 바로 위층에서는 몽구회장이 집무를 보고 있었지만 몽헌회장은 찾아가지 않았다.

몽헌회장은 오후 4시경 회장집무실을 나와 가회동 정명예회장 집으로 갔다. 4시5분경 이회장도 따라 들어갔다. 4시25분경 이회장이 나와 문 밖에 서있던 기자들에게 기자회견 사실을 알렸고 5분 뒤 몽헌회장이 나와 굳은 표정으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때만 해도 숨가쁘게 돌아가던 현대 인사파동이 사실상 끝난 상태였음을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14일 이익치회장이 전격 경질된 이후 상황은 모든 것이 몽헌회장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17일 이회장이 중국 상하이로 황급히 나갈 때만 하더라도 그가 증권회장으로 다시 돌아올 것으로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욱이 22일 정명예회장이 42년간 살던 청운동 집을 물려주고 가회동 새 집으로 이사했을 때는 몽구회장의 활짝 웃는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고 ‘명예회장이 몽구회장 손을 들어줬다’는 해석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모든 것은 일순간에 뒤바뀌었다. ‘집을 물려줌으로써 집안 대물림이라는 상징적인 후계자리는 장자에게 주고, 그룹 경영이라는 실질적인 후계자는 몽헌회장이 될 것’이라는 일부 관측이 맞아들어간 것.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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