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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0월 20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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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 중 생산라인 설치 등 제품의 실제 제조에는 불과 몇달만 소요된다. 대부분의 개발기간은 제품의 기획 마케팅전략 시장조사 다자인 등에 할당된다. 외국의 유명기업들은 이처럼 소비자의 구미에 맞는 기능과 디자인을 먼저 결정하고 나서 제품생산에 들어가는 ‘역순(逆順)’이 일반화돼 있다.
반면 디자인을 제조공정의 하위 내지는 부속 과정으로 보는 우리 기업의 풍토와는 상반된다. 우리의 경우 그만큼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나 투자는 낮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가격이나 품질은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구매 의욕을 자극하는 ‘화장술’인 디자인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의 경쟁력 강화 관건은 디자인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외국제품 모방 급급
▽품질만 좋으면 그만?〓최근 부도를 낸 한 정수기업체 사장은 실패의 원인이 ‘촌스러운 디자인’이었다고 후회했다.
“품질만 좋으면 색깔이나 포장은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을 줄 알고 시장에 내놨는데 거들떠보지도 않더군요.”
산업자원부가 최근 3개월간 국내 제조업체 1만개를 대상으로 표본조사한 결과를 보면 디자인 투자의 현주소가 여실히 나타난다. 디자인에 투자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의 27.7%, 전담부서가 있는 업체는 겨우 10.2%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디자인을 외국 잡지나 제품을 모방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설령 디자인에 투자하려고 해도 쉽진 않다. 골프스윙기 제조업체인 D사는 자체개발한 신제품을 위해 전문 디자이너를 구하려고 했지만 국내에는 전문가가 없어 포기했다. 할 수 없이 일본으로 건너가 5000달러를 주고 그곳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야 했다. ‘디자인 인프라’ 자체가 부실하다는 얘기다.
산자부의 조사에 응한 기업들은 품목을 가리지 않고 선진국 제품과 비교해 디자인이 기술이나 가격에 비해 훨씬 취약한 것으로 평가했다. 매출액 대비 디자인 투자 비중도 한국은 0.34%로 영국(2.6%)의 8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최근 공동기획 늘어
▽디자인 투자 ‘기지개’〓그러나 다행히 국내에서도 최근들어 점차 디자인에 눈뜨고 있는 추세다. 제품 개발 초기단계에서부터 디자인팀과 공동기획하는 사례도 많다.
LG전자가 내놓은 히트 상품 중 하나인 휴대용 녹음기 ‘아하’가 그런 경우. 아하는 이 회사 디자인연구소가 제품의 모양과 기능을 지정해 공장에 넘기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모양과 색상을 조사해 이를 공장에 ‘주문’한 것.
삼성전자 등 다른 가전업체들도 이같은 ‘디자인 마인드’가 확산되고 있다. 산업디자인진흥원이 디자인 투자에 취약한 중소기업을 위해 디자이너 지원 사업을 펼쳐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기도 하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