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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6월 28일 19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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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메스를 들이대겠다는 부분은 증권 투신 보험 등 비은행 금융기관. 5대재벌의 은행지분보유 한도를 4%로 엄격히 제한해온 것과는 달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 이후 증권시장 등 2금융권 시장에서 재벌들의 주도적 역할을 사실상 ‘묵인’하며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업들의 증자를 통한 자금조달 등이 일단락되고 금융시장이 어느정도 안정됐다고 판단하자 메스를 든 것. 재벌그룹의 금융기관 장악을 막겠다는 것은 서민중심의 경제정책을 펴겠다는 ‘대중경제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재벌이 좌우하는 2금융권〓5대 그룹의 시장점유율이 증권과 신용카드업의 경우 이미 50%를 넘어 섰고 보험업도 50%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투신업은 97년 3월 5.3%이던 시장점유율이 지난 2년동안 30.2%(99년 3월)로 급증했다.
그룹별로는 현대가 15개(강원은행 포함), 삼성과 LG가 각각 8개, 대우가 6개, SK가 4개의 금융기관을 갖고 있다.
정부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최근 증시가 활황을 보이면서 시중자금이 증시로 몰렸고 이 자금의 절반 이상이 재벌그룹 계열 증권사와 투신사로 집중되자 2금융권의 사(私)금고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 투자자들이 주식에 대신 투자해달라고 투신사에 맡긴 돈은 28조원에 달한다. 이중 현대 삼성 대우 LG SK 등 5대그룹 계열 투신운용사들에 몰린 돈은 절반수준인 14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재벌독주 부작용〓재벌그룹 계열 투신운용사의 경우 웬만한 상장기업의 지분을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사들일 정도로 수탁금액이 많아졌다. 특히 자기그룹의 다른 계열사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유지하거나 증자때 간접적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정업체에 대한 투자한도는 발행주식의 20%까지, 자기 그룹 계열사의 경우에는 신탁자산의 10%까지만 투자할 수 있도록 법으로 묶어두었지만 다른 그룹계열사와 담합을 한다면 그 이상 투자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예컨대 A재벌 투신사가 B재벌 계열사들의 주식을 집중매입해주는 대가로 B재벌 투신사가 A재벌 계열사의 주식을 사준다면 그룹 전체 차원의 제한은 받지 않을 수 있다.
수익증권 판매 등 일반업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재벌계열사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비재벌 D증권사의 관계자는 “재벌그룹 계열 증권사보다 건전성 등에서 점수가 좋은데도 증권사 이름에 ‘현대’나 ‘삼성’자가 붙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익증권 판매에서 죽을 쑤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정부 구상〓정부 대책은 소유구조보다는 지배구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미 재벌들이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금융기관을 보유지분제한 등의 조치로 다시 빼앗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
다만 이사회를 강화하고 감사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을 통해 지배구조를 개선할 방침. 이를 위해 재벌계열 금융회사의 이사회는 비상임이사를 50%이상 선임하고 은행에 적용한 것과 유사한 감사위원회제도를 도입할 방침이다.
아울러 투신업법과 증권투자회사법을 개정, 특정업체에 대한 투자한도를 발행주식의 20%에서 10%로, 주요 계열사에 대한 주식투자 한도를 현행 신탁자산의 10%에서 5%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5월부터 규제방안을 마련해왔으며 10월경에는 법제화해 실제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대책의 영향〓이같은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재벌의 운신의 폭이 다소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은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재벌계열사들이 증자를 하면 기관투자가들이 ‘우량주를 산다’는 명목으로 상당부분을 떠 안아줄 수도 있었으나 이같은 관행은 비상임이사나 투자한도규정으로 걸러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마음만 먹으면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던 것이 갖가지 장치로 제약을 받게 되는 것.
그러나 재벌의 소유구조는 그대로 둔 채 몇가지 장치를 통해 이들의 불공정 거래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대신증권 심충보(沈忠輔)투자전략실장은 “재벌계열 투신사들이 자기계열 종목에 대한 투자비중을 줄이는 조치가 내려지면 주식시장에선 그동안 기관투자가들이 많이 사지 않았던 저가 대형주에 매기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용재기자〉y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