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국제생명 전산실직원들 “우리에겐 퇴출 없다”

  • 입력 1998년 12월 31일 18시 06분


“우리 사전에 ‘퇴출’이란 없다.”

99년 기묘(己卯)년 새아침을 맞으며 유니트정보기술㈜ 직원 24명은 날렵한 토끼같은 도약을 꿈꾼다.

‘IMF칼바람’이 불기 시작한 97년 11월. 국제생명보험㈜ 전산실에 근무하던 이들도 삭풍을 비켜갈 수 없었다. 제2금융권이 흔들거리고 국제생명의 경우도 보험해약 등으로 돈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8월 이들은 9년여 동안 몸담아온 국제생명이 ‘퇴출대상’에 포함됐다는 신문 기사를 접했다.

생존을 위한 ‘각개약진’이 시작됐다. 일찌감치 회사 사정을 파악하고 미리 구해 놓은 직장으로 간 직원, 인수보험사의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노조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동료, 이번 기회에 못다한 공부를 하겠다는 후배….

하지만 전산실장 문영찬(文榮燦·41)사장이 “합심해서 ‘창업의 길’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문사장은 사업구상을 하나하나 털어놓았다. 의견은 분분했으며 이미 다른 직장을 구했거나 인수회사인 삼성생명으로부터 고용승계 ‘언질’을 받은 직원들은 시큰둥해했다.

“문사장은 삽겹살 구이집에서 소주 1박스를 시켜놓고 한명한명 설득해나갔습니다. 집에까지 찾아가 함께 일하자고 통사정도 했지요. 그의 끈질긴 설득과 비전 제시로 만장일치 ‘창업’결정이 내려졌습니다.” 한 직원의 말이다.

급한 대로 과장 7명이 법인설립 사무실마련 등에 나섰다. 사무실이 정해지자 일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책상 걸상 등 각종 비품은 국제생명에서 싼 가격에 구입했다. 다들 빠듯한 형편이지만 5천만원의 자본금도 모아졌다.

드디어 10월19일 이들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천록빌딩에서 감격의 창업식을 가졌다. 보험업무 전반에 걸친 전산업무 분석과 설계, 그리고 프로그램 개발 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국내 최초의 금융전산컨설팅 회사가 차려진 것이다.

“수익금 전액을 재투자할 계획입니다. 급변하는 금융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경쟁력 있는 실력뿐입니다.” 올해 예상매출액 30억원을 꿈꾸는 문사장의 새해 포부다.

〈이호갑기자〉gd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