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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1월 17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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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회계사(CPA)출신으로 다른 어떤 대주주(오너)들보다 회사의 돈흐름에 밝은 이회장은 최근 회사를 떠나는 임원이 잇따르자 직접 은행 실무자들을 찾아다니며 재건을 모색하고 있다.
1년여에 걸친 금융위기와 정부의 재벌개혁 강공 속에서 그룹세(勢)를 유지하는 재벌은 고작 8,9개. 신호처럼 중하위 재벌 대부분은 법정관리 화의 워크아웃 절차를 밟으면서 공중분해 위기에 몰렸고 특히 오너들의 신분은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처지.
신예 재벌을 꿈꾸며 사세를 불렸던 이들 오너들은 이제 ‘단출한’ 계열사를 밑천삼아 눈물겨운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모색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채권단의 대주주 손실분담 원칙에 묶여 이들이 경영전면에 다시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휠체어의 부도옹’으로 더 잘 알려진 정인영(鄭仁永·78)한라명예회장. 잠실 사무실도 매일 찾고 사장단회의에도 꼬박꼬박 얼굴을 내밀지만 ‘회사재건’의 대임은 이미 아들(정몽원·鄭夢元회장)몫으로 돌렸다.
다행히 주력 4개사가 최근 정회장의 눈물겨운 설득 끝에 은행권이 엄청난 부채탕감 조건을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화의 법정관리 인가도 받아놓은 상태.
다른 그룹에 앞서 좌초의 쓰라림을 겪은 진로의 장진호(張震浩·46)회장.
최근 세풍(稅風) 총풍(銃風)사건에까지 연루돼 검찰 밤샘조사를 받는 바람에 회사 주변에서는 “사옥(서초동)이 검찰청에 가깝다보니 갈 일이 자주 생기는 모양”이라는 우스개까지 무성. 하지만 정작 본인은 사무실에 거의 출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내외 돈줄을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중.
반면 이미 지분이 소각돼 그룹과 인연이 끊긴 총수들은 ‘부자 3대 못간다’는 옛말을 곱씹으며 칩거중이다.
박건배(朴健培·50)해태회장은 남영동 그룹 구조조정본부 사옥을 정시 출퇴근한다. 하지만 이달 11일 임시주총에서 지분전량이 소각돼 경영권은 은행쪽에 넘어간 상태. 다만 선대회장이 물려준 호남의 간판기업 해태제과가 은행권의 채무 출자전환을 통한 정상화로 가닥을 잡고 있어 불행 중 다행. 김의철(金義徹·56)뉴코아회장은 아예 집에서 칩거중.
한국무역협회장을 역임하는 등 재계의 ‘큰형님’으로 통했던 대농의 박용학(朴龍學·83)전명예회장은 아예 미국에 체류중이다. 아들 박영일(朴泳逸·53)전회장은 법정관리 후 미도파 상계점에 있던 회장 집무실을 떠났고 회사측과도 거의 연락을 끊고 있다. 거평 나승렬(羅承烈·53)회장은 채권자들의 성화에 쫓겨 서울 근교에서 칩거중. 검찰이 부당한 자금유용을 내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언제 있을지 모르는 ‘소환통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래정·정재균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