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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8년 11월 1일 19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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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정보의 해외유출은 주로 외국 기업들과의 투자상담 과정에서 일어난다. 한푼의 외자가 아쉬운 우리 기업들은 외국투자가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일부 악덕 외국기업들은 이런 약점을 이용해 국내회사의 기밀자료를 확보한 뒤 상담을 중단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례들이 수두룩하다. 외국기업들과 경합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 기업들은 투자를 위장한 해외 경쟁업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다. 뉴욕 월가에서 한국기업 기밀이 밀거래되고 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수출비중이 높은 반도체부문만 해도 그렇다. 전경련은 현대와 LG가 외국 컨설팅회사의 평가를 받은 후 합병문제를 매듭짓도록 했지만 평가과정에서 첨단 반도체기술의 유출이 불을 보듯 훤하다는 것이다. 거론되고 있는 컨설팅기관은 모두 미반도체 업계를 단골고객으로 한 회사들이다. 평가를 받으려면 신기술개발전략 생산능력 원가구성 등 핵심자료를 건네줘야 하기 때문에 국내업계는 외국경쟁업체 앞에 벌거벗은 상태가 될 수도 있다. 빅딜대상 가운데 반도체부문이 유독 구조조정에 부진한 이유중 하나다. 빅딜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두려워 업체들은 드러내놓고 말도 못한다.
이런 식으로 기업기밀이 빠져나간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내부적으로 아무리 구조조정을 잘한다 해도 대외경쟁력을 잃고나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국제경쟁력을 잃으면 경제회복은 요원해진다. 외국으로 빠져나간 기업비밀들이 통상협상에서 우리에 대한 공격무기로 사용된 사례도 여러번 있었다. 이번에 유출된 자료들이 그렇게 쓰이지 말라는 법이 없다. 과거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 기업들은 자료를 주면서도 그런 걱정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산업정보 유출은 이제 한 두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 업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마땅한 방안이 당장 없더라도 포기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아니다. 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법을 강화하고 외국기업에 대한 감시체제를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정부가 업계의 고충에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외자유치도 중요하지만 산업의 존립기반 그 자체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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