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회생 힘모으자(중)]개혁 실천해야 세계가 믿는다

  • 입력 1998년 5월 12일 19시 24분


“놀랍다. 그리고 믿음이 간다.”

한국보다 두달 먼저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들어간 태국에 대한 국제금융가의 반응이다.

작년 11월 취임한 추안 리크파이총리는 한달 뒤 금융 부실의 온상이던 91개 파이낸스 컴퍼니(한국의 종합금융사 성격) 중 56개를 폐쇄했다.

올 2월엔 전국 15개 은행 중 부실이 심한 4곳을 국유화했으며 6월부터 이들의 민영화에 들어갈 계획.

“이같은 행동이 앞섰기 때문에 추안총리가 발표한 정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실천된다는 인식이 국제금융가에 확실히 심어졌다.”(변양호·邊陽浩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장)

이에 비해 한국은 ‘약속한 말만큼 행동이 따르지 않는 나라’로 외국인들에게 비치고 있다. IMF 구제금융 신청후 반년이 다 됐지만 금융 및 기업 개혁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평가들.

작년 1월 한보그룹 부도 이후 부실의 실체를 확연하게 드러낸 서울은행 제일은행과 외환위기의 기폭제였던 기아그룹 처리가 지연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 와서야 금융 및 기업 구조조정의 윤곽이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반년의 말잔치’에 실망한 외국인들은 여전히 “좀더 두고 봐야 개혁의 성패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차가운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올 1∼4월중 외국인 직접투자가 10억7천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36억8천만달러)의 29%에 그친 것이나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유입이 최근들어 끊어진 것도 구조개혁에 실질적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들.

한마디로 ‘실천 없이는 국제적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결론.

실천 이전에 구조조정 약속 자체에 대해서도 ‘아직도 안이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자기자본비율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에 미달하는 12개 은행은 4월말 정부의 요구에 따라 경영개선계획서를 제출했다. 한결같이 증자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은 “현실성 없는 방안의 나열 같은 인상”이라고 지적했다.도이치은행의 한 관계자도 “도대체 누가 증자에 참여하겠는가. 후순위차입에도 계열사가 아닌 한 아무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개혁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혹평했다.

해당 은행들은 “자구노력으로 점포의 15%와 인원의 21%를 단계적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며 “우리도 죽을 노릇”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은행 정상화를 위해서는 수십조원의 국민 세금을 쏟아부어야 할 판인데 그 정도의 자구노력으로 되겠느냐는 지적이 뒤따른다.

주요 재벌그룹은 작년 대통령선거 후 4개월 이상 정부와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지난주 구조조정계획안을 새로 내놓았다. 3∼5개의 주력업종선정과 수십억달러의 외자유치 추진이 주요내용.

이에 대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0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기업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며 부분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5대 그룹의 경우 한결같이 금융업을 주력업종에 포함시켰다.

이에 대해 증권거래소 한 관계자는 “금융기관을 그룹의 자금줄로 활용하려는 구시대적 발상을 버리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정부의 한 관계자는 “무슨 주력업종이 그렇게 많은가. 과연 한 업종이라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업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재벌들은 구조조정을 위해 부동산이나 계열사를 매각하려 해도 사는 곳이 없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남기영(南基濚)HG아시아증권 지점장은 “핵심이 아닌 주변 계열사를 매각하려고 내놓으면 외국인들이 사겠느냐”며 “현상황에서 기업이나 부동산을 제값 받고 팔겠다는 발상은 안팔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지와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주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을 잇달아 실었다. “금융시스템 및 기업의 구조조정이 지금보다 확실하고 강력하게 추진되지 않는다면 한국경제는 당분간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다.”

〈반병희·천광암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