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 망하면 은행도 죽는다

  • 입력 1997년 12월 30일 19시 53분


하루에 1백여개의 기업이 부도를 내고 쓰러지는 사상 최악의 자금대란(大亂)이다. 굴지의 재벌기업에서부터 중견 중소기업 수출업체 할 것 없이 하루하루 도산을 모면하는 데 피를 말린다. 이렇게 가다가는 연말연시에 대량도산으로 실물경제 기반이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이 재계를 짓누르고 있다. 구조조정이고 뭐고 기업이 다 망하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자금난은 은행들의 무차별적인 대출회수와 신규대출 중단에서 비롯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하는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충족하기 위해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자금경색이 오래 가면 멀쩡한 기업까지 무더기로 도산할 수밖에 없다. 은행들은 극도의 이기주의를 버리고 하루 속히 금융시스템을 안정시켜 자금이 돌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망하면 은행도 죽는다는 걸 왜 모르는가. 비상경제대책위원회와 정부는 부랴부랴 은행권에 대출확대를 독려하고 나섰다. 수출신용장을 은행이 전액 매입토록 하고 신용보증기금에 아시아개발은행(ADB)차관자금 10억달러와 정부예산 7천억원을 출연해 기업대출을 돕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묶이는 자금은 한국은행이 지원한다. 이로써 당분간은 자금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은행권이 실물경제의 파탄을 막는 데 적극 나서지 않으면 정부대책은 미봉책에 그치고 만다. 관치(官治)금융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으나 정부는 은행의 대출이 원활해질 때까지 강력한 행정지도를 펴야 한다. 건실한 기업이 부도를 내는 현재의 자금시장은 정상이 아니다.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4조원 이상의 후순위채권을 사주어 재무구조 개선을 돕고, 30조원의 대출여력이 생겼음에도 은행들이 자금시장을 마비상태에 빠뜨리는 행태를 더이상 용납해선 안된다. 기업대출을 꺼리고 정부 정책에 협조하지 않는 은행은 각종 지원에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기업대출 실적이 좋은 은행에 대해서는 후순위채권 매입액을 늘리고 성업공사의 부실채권 인수에도 우대키로 한 정부의 방침은 옳다. 외환위기의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 정부는 금융권과 함께 자금시장을 안정시키는 일이 발등의 불이다. 한계기업의 도산이야 어쩔 수 없지만 건실한 기업의 연쇄도산만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환율 상승으로 경쟁력이 생긴 수출이 탄력을 받도록 무역금융의 획기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연불수출에 대한 자금지원 등 추가적인 수출촉진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은행으로 하여금 수출어음을 전량 매입토록 한 조치가 일선 창구에서 신속하게 집행되는지도 정부는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수출증대로 국제수지 개선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IMF체제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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