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증권 부도에 이은 동서증권의 영업중지로 증권업계는 이제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냉혹한 생존경쟁의 전장(戰場)에 내몰리게 됐다. 피말리는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이미 「다음 차례」로 공공연히 거론되는 증권사도 5,6개나 된다.
증권사들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취약한 영업기반으로 수익성이 악화한데다 계속된 주가폭락으로 대규모 주식 평가손마저 겹쳤기 때문이다.
▼동서증권 왜 이렇게 됐나〓금융시장의 「신용공황」이 직접 원인. 일단 자금난에 빠졌다는 소문이 퍼지자 최근 3,4일동안 2천억여원의 예탁금중 절반 가량이 인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원인(遠因)은 3년이상 계속된 증시침체에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올들어 주가폭락으로 동서증권의 상반기(4∼9월) 상품주식 평가손은 9백48억원으로 국내 증권사중 가장 컸다.
하루짜리 콜자금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도 결정타였다. 9월말 현재 동서증권의 차입금 5천6백79억원중 콜자금이 2천3백12억원에 달했다.
▼다른 증권사들도 부실하다〓국내 34개 증권사의 96사업연도(96년4월∼97년3월) 상품주식 평가손은 1조3천5백46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62%가량 늘어났다.
주식 위탁매매 수수료에 과다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도 문제. 주가폭락으로 고객주문이 격감하면 곧바로 수지악화로 이어진다. 올 상반기 증권사의 위탁수수료 비중은 전체 수입의 37.9%. 미국의 경우 15%선에 그치고 있다.
전 증권사가 콜시장에서 조달한 단기차입금이 무려 10조5천억원에 이르고 약정을 올리기 위해 무리한 외형경쟁을 해온 것도 전반적인 증권사 부실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판도변화 당긴다〓증권업계는 고려증권에 이은 동서증권의 도산을 지각변동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업계는 △재벌그룹 계열사이거나 △현금흐름이 좋거나 △확실한 전문분야를 개척한 회사가 아니면 현 공황에서 살아남기 힘들다고 본다. 불안해진 고객들이 계좌를 옮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적자」만 생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고려증권 부도이후 일부 대형 증권사에는 하루 2천억원 이상의 고객예탁금이 밀려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강운·정경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