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 유예―정지) 위기에 몰리자 정부가 체면과 염치를 모두 벗어던지고 사태해결에 나서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미국 일본을 상대로 급전을 달라고 읍소하는 한편 국내 금융기관들에겐 자금지원을 해줄테니 기업대출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다.
특히 임창열(林昌烈)부총리는 『금융시장의 자금흐름을 왜곡시키는 은행에 대해선 상응한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했다.
▼달러를 구하라〓IMF 자금지원에도 외국투자가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외환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외국투자가들은 신규투자는 물론 기존채무의 상환연장도 거부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열흘이상 지속되면 모라토리엄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부는 우선 미국과 일본에 매달리기로 했다.
정인용(鄭寅用)전부총리를 대통령특사로 파견, 긴급자금 지원을 호소하기로 했다. 김경원(金瓊元) 전주미대사 김만제(金滿堤)포철회장 한승수(韓昇洙)전부총리 등 해외통들도 뉴욕 월스트리트로 총동원된다.
정부는 단기자금 지원도 중요하지만 당장은 기존채무의 상환연장이 더욱 급하다고 보고 있다. 더욱이 향후 1년간 갚아야 할 외채가 1천억달러를 넘는 점을 감안해도 상환연장은 불가피하다. 국제금융자본가들을 설득하지 않고는 「백약(百藥)이 무효(無效)」인 상황이다.
자금지원로는 우선 IMF구제금융 외에 IMF 보완준비금장치(SRF)설치에 기대를 걸기로 했다. SRF가 설치되면 급한 대로 1백억달러를 추가로 빌려보겠다는 것.
이와 함께 일본정부와 브리지론(긴급시 곧바로 빌려주는 자금)으로 당초 약속한 1백억달러중 50억달러를 연내에 지원받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우리정부는 일본측 반응이 긍정적이라고 설명하지만 일본정부 입장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또 산업은행이 뉴욕증시에서 금리불문하고 27억달러를 빌려오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정부보증 단기국채를 해외시장에 내다 파는 방법도 고려중이다. 하지만 산은 기채가 여전히 난항을 겪는데다 단기국채 발행도 국회동의를 얻는 절차가 필요하다.
재경원 관계자는 『외환위기의 핵심은 신뢰도 회복이며 우선 급한 대로 국무총리 장관 재벌회장들이 외국 금융가들을 찾아가 통사정해서라도 채무상환 연장을 받아와야 할 상황』이라고 전했다.
▼은행을 살려 자금 돌린다〓정부는 제일과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시중은행 및 지방은행들도 증자할 경우 정부 보유주식으로 현물출자할 방침. 기간은 2년간으로 하고 지분율은 50%미만으로 잡고 있다. 2년 동안에 자구노력을 완성하라는 의미.
현물출자하면 은행들은 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가 2년후 정부와 주식을 맞교환하게 된다. 방식은 은행들이 감자(減資)를 통해 정부보유 주식을 넘기고 은행은 자사주매입 및 공모주 매각 형식으로 자본금을 다시 늘릴 예정이다.
은행들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후순위채권을 발행하면 이를 연 기금에서 보유중인 국공채와 교환해 준다. 은행들의 후순위채 발행한도는 자기자본의 50%. 현재 22개 은행이 신청한 후순위채 규모는 4조원 정도이며 만기는 대략 5년이다.
한국은행은 총 11조3천억원을 은행 종금 증권 투신 등에 지원한다.
14개 종금사에 묶인 콜자금 7조3천억원을 풀어주기 위해 4조6천억원을 콜자금보다 1%포인트 낮은 금리로 직접 대출해 주고 나머지 2조7천억원은 은행신탁계정이 보유한 국공채를 매입하게 된다.
증권금융을 경유해 증권사에 2조원을 대출하고 종금사에 대해 신용관리기금을 통해 1조원을 지원하게 된다. 투신사에 대해서도 환매조건부채권(RP)거래방식으로 1조원을 제공한다.
이번 조치로 대부분의 은행들은 부실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과 유가증권평가손을 100% 반영해도 일단 자기자본비율 8%를 넘길 것으로 보인다.
임부총리는 『은행들은 이번 정부지원 대가로 인원감축 점포축소 임금삭감 등의 자구계획을 이행해야 한다』며 『정부가 은행업을 인가해 준 것은 자금을 기업에 공급하여 경제를 살리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임부총리는 특히 『은행의 어려움을 적극 지원하겠지만 본연의 의무를 등한시하여 경쟁력 있는 기업을 외면하고 금융시장의 자금흐름을 왜곡시키는 은행에 대해선 상응한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임부총리의 경고는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기 위해 기업대출을 회수하거나 자금을 묶어놓은 은행들을 과감히 정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임규진기자〉